파편과 죽음

추억은 파편의 다른 이름이다

by Helia

살아가다 보면 문득, 인생이라는 유리창에 금이 가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 금은 아주 작고 미세하지만, 그 틈으로 서늘한 바람이 스며든다. 그리고 어느 날, 작은 충격에도 유리는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나는 그 순간을 '죽음'이라고 부른다. 단지 육체의 죽음만이 아니라, 관계의 죽음, 감정의 죽음, 혹은 한 시절의 죽음 말이다.

파편은 언제나 죽음의 그림자를 품고 있다. 모든 죽음은 파편을 남긴다. 누군가가 사라진 자리에는 늘 무언가 깨진 조각이 있다. 그 파편은 아프게 반짝이며, 남은 사람들의 손끝을 베어낸다. 그래서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다. 오히려 시작이다. 고통의 시작, 기억의 시작, 그리고 견딤의 시작.

가장 먼저 떠오르는 죽음은 할아버지의 장례식이었다. 그날은 이상하리만치 화창한 봄날이었다.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나는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바라보았다. 라디오에서 흐르던 클래식 음악이 어딘가 쓸쓸하게 들렸고, 기사님은 나지막이 볼륨을 높여주었다. 그 배려는 말없이 다정했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울었다. 죽음은 그렇게 예고 없이, 너무 조용하게 찾아왔다.

그날 이후 나는 문득문득 파편을 줍는 사람처럼 살고 있다. 추억이라는 이름의 조각들을 조심스레 손에 쥐었다 놓기를 반복하면서. 그 조각들엔 아직도 따뜻한 체온이 남아 있는 듯하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날카로워서 자꾸만 마음을 벤다.

사랑이 끝난 후에도 파편은 남는다. 누군가가 떠난 후에도, 남겨진 말들과 순간들, 차마 닫히지 않은 메시지 창은 여전히 그 사람의 흔적을 품고 있다. "잘 지내"라는 말 한마디가 끝이 아니었다. 그 말 이후에도 한참을 혼자 울어야 했고, 지워지지 않는 이름에 매일 새로이 상처를 입어야 했다. 나는 사랑이라는 유리창이 산산조각 나는 장면을 수없이 겪었다. 그리고 그 파편들 위를 맨발로 걸어야 했다.

죽음은 늘 정적 속에 숨는다. 파괴가 아닌, 정지의 순간으로 다가온다. 무언가가 '멈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엔 시간이 걸린다. 처음에는 단순한 부재로 여겨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부재는 실감이 되어, 나중엔 현실이 된다. 그제야 깨닫게 된다. 더 이상 손을 뻗을 수 없고, 목소리를 들을 수 없으며, 그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죽음의 파편들이 내 안에 자라기 시작했다. 나는 부서진 채로 살아남았다.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았고, 다시 완전해지지도 않았다. 대신, 조각난 내 마음의 틈새로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빛은 새로운 관계였고, 새로운 시작이었다. 죽음이 모든 것을 끝내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게 만들었다.

나는 한때 '파편을 안고 살아간다'는 말이 무척 두려웠다. 상처 입은 채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파편을 품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다만, 그것이 찌르지 않도록, 가끔은 그것을 조심스럽게 쓰다듬고, 또 어떤 날은 그 위에 꽃을 얹기도 하면서.

죽음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공허함만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더 생생하게 느끼게 만든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하루의 평범함조차, 이제는 기적처럼 소중해진다. 그 사람이 살아있을 때는 당연했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우리는 비로소 삶을 더 사랑하게 된다.

나는 여전히 파편을 다 모으지 못했다. 여전히 그 조각들 중 어떤 것은 내 발끝을 베고, 어떤 것은 아직 어디선가 반짝이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언젠가 나를 완성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부서진 조각들로 다시 이어 붙여진 존재들. 그래서 더 단단하고, 더 유일하다.

어떤 죽음은 날카롭고 갑작스럽다. 예고 없이 덮쳐와 모든 것을 뒤흔든다. 또 어떤 죽음은 조용하고 서서히 다가온다. 매일 조금씩 사라지는 방식으로, 아주 은근히, 그러나 분명하게. 나는 후자의 죽음을 더 두려워한다. 떠난다는 걸 알아차릴 틈도 없이 사라지는 이별. 눈앞에서 천천히 희미해지는 누군가를 바라보는 일은, 차라리 단칼에 사라지는 것보다 더 아프다.

삶은 끊임없는 죽음의 연속이다.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고, 사랑이 식고, 계절이 바뀌고, 어떤 이름은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매일 죽고, 또 매일 살아난다. 기억 속에, 추억 속에, 혹은 아주 새로운 시작 속에서.

그러니 파편을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그건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아직 아파할 수 있다는 건, 아직 살아 있다는 말이고, 아직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이름의 시작이고, 그 시작에는 언제나 빛이 있다.

나는 오늘도 그 빛을 향해, 조각난 마음을 모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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