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누군가가 되기로 했다
13802.
단지 숫자 다섯 자리였지만, 아진은 직감적으로 그것이 무언가의 ‘코드’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녀는 메모지 뒷면을 다시 펼쳐 들었다. 희미한 압각, 잉크 자국, 마치 누군가 일부러 흔적을 남긴 것처럼. 실수일 리 없었다. 그 번호는 흔적이었다. 누군가의, 혹은 무언가의.
“민호야.” “네.” “병원 보안 시스템에 ‘13802’ 들어간 기록 있어?”
민호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곧바로 서버에 접속했다. 타자 소리만이 정적을 깼다.
“찾았어요. ‘13802-A’. 작년 7월 11일 밤 10시 46분에 기록된 접근 로그예요. 사용자 정보는 지워졌고, 기록 자체도 메인에서는 사라졌어요. 근데… 백업 서버에 위치 데이터가 살아 있어요.”
“위치는?” “지하 2층 폐쇄 구역, 실험동 2번실.”
그 시간은 하율이 병원에서 사라진 바로 다음 날 밤이었다. 모든 퍼즐 조각들이 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민호야. 오늘 병원 가자.”
민호는 고개를 들며 당황한 얼굴을 했다. “지금이요? 어제보다 보안 더 심할 텐데요…”
“그래서 오늘이야. 누가 안에 있다는 뜻이니까.”
그녀는 말없이 가방을 챙겼다. 민호는 그녀의 등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진짜 누나 스타일이네요. 옛날에도 이러다가…”
“계속 말할래?” 아진이 눈을 흘기자 민호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
병원 입구는 생각보다 삼엄했다. 아진은 위조된 응급 설비 점검증을 꺼내 들며 말했다.
“지하 2층 B구역. 장비 점검 요청받았어요.”
경비는 무전기를 들고 뭔가를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10분 안에 끝내세요.”
지하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 민호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타고 들려왔다.
“환기구 오른쪽에 숨겨진 문 있어요. 강하게 밀면 열릴 거예요.”
지하 2층. 공기는 축축했고, 바닥은 미끄러웠다. 환풍기 옆, 벽 틈 사이. 손전등을 켠 아진은 조심스럽게 손바닥으로 벽을 더듬었다. 금속성 문이 손끝에 걸렸다. 그녀는 힘을 줘 문을 밀었다. 녹슨 철문은 짧은 신음을 내며 열렸다.
좁고 긴 복도. 벽면 끝에는 번호가 붙은 문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2-실험동 #13802-A’
자물쇠는 잠겨 있었지만, 오래된 기계식이었다. 아진은 머리핀을 꺼냈다. 딸깍. 문이 열렸다.
---
안은 폐허였다. 종이들은 젖어 있었고, 가구는 무너진 채 방치돼 있었다.
하지만 벽면 유리 너머, 투명한 보관 박스 안에서 검은색 파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환자 X-07 / 장하율 / 대상자 기록 - 최종]
그 순간—
쿵.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아진은 뒤돌아봤다. 복도엔 아무도 없었다. 단지 어둠과 그녀의 숨소리만이 남아 있었다.
---
사무소로 돌아와, 아진은 파일을 펼쳤다. 민호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진짜… 찾으신 거예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파일을 넘겼다.
X-07부터 X-14까지. 여러 명의 실험 대상자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중 일부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시술 후 인지 기능은 유지되었으나, 외형 변화 급격.
신분 정보 및 기억 장치는 삭제. 신규 인물로 등록.”
하율의 페이지 아래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X-07: 신체는 늙었으나, 기억은 그대로다.”
민호는 숨을 삼켰다. “그럼… 하율 씨는 자기가 누군지 알고 있었던 거네요?”
“응. 그리고 병원에서 도망쳤겠지.”
파일 마지막 장에는 또 다른 문장이 있었다.
“대상자는 탈출 시도 중 행방불명.
보안 로그 삭제, 프로젝트 잠정 중단.”
아진은 말없이 파일을 덮었다. 책상 옆에 놓인 사진 한 장. 젊고, 환하게 웃고 있던 장하율.
민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거… 공개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는 이걸 끝까지 덮으려 할 거고, 누군가는 끝까지 파헤쳐야 해.”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로등 아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나는… 그 누군가가 되기로 했어.”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