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삶의 흔적
탐정사무소의 책상 위. 낡은 회색 복사지가 바람 한 점 없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녀가 말한 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에서 발급된 기록입니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는 동일한데, 사진이 지금과 전혀 달라요.”
민호가 조심스럽게 프린트된 문서를 내려놓았다. 오래된 진료카드 복사본. 오른쪽 상단에는 퇴색된 병원 로고가 붙어 있었고, 가운데엔 ‘내시경 결과 상담’이라는 작은 글자가 인쇄돼 있었다. 병원명은 ‘연성의료센터’. 이미 5년 전에 폐업한 병원이다.
아진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시술을 받으러 갔다던 A성형외과엔 아무 기록도 없는데, 정작 기록이 남아 있는 건 이 병원이라는 거지?”
민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병원은 일반 내과였고, 원장도 지금은 행방이 묘연합니다. 연락처도 다 끊겼고요.”
사진 속 여성은 젊고 생기 있는 20대 후반의 얼굴이었다. 지금의 하율과는 분명히 다르다. 피부결도 다르고, 눈매도 다르다. 그러나 기록 속 이름과 주민번호는 분명히 장하율이었다.
아진은 무언가가 덜컥 걸리는 느낌에 목덜미를 매만졌다. 그녀의 기억이 틀린 걸까? 아니면, 그녀에게 입력된 ‘기억’이 조작된 것일까.
“혹시, 이 병원에서 뭔가 다른 시술을 받았을 가능성은?”
“진료기록엔 단순 위장내시경 상담만 나와 있어요. 이후 기록은 완전히 비어 있고요.”
“삭제된 걸 수도 있겠네.”
아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한 바퀴 돌았다. 다시 퍼즐 조각이 흩어진 느낌. 단서 하나는 손에 들어왔지만, 그것이 전체 그림 어디에 들어맞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진동이 울렸다.
‘혹시… 제 여권과 주민등록증 복사본을 봐주실 수 있나요?’
발신자는 의뢰인이었다. 하율.
아진은 서랍을 열고 그날 그녀가 제출했던 신분 서류를 꺼냈다. 무언가… 기묘한 불편감이 스며들었다. 두 장의 신분증. 사진은 같았다. 문제는 서명이었다.
아진은 두 서류를 책상 위에 나란히 올려놓고 확대경을 꺼냈다. 서명을 들여다본다. 하나는 일정한 리듬으로 단정했고, 다른 하나는 눌림이 강하게 들어간 필체였다.
“민호야, 이거 봐.”
“네?”
“서명이 달라.”
민호가 다가왔다. “사진은 같은데, 서명이 다르다고요?”
“이건 습관적인 필체야. 손의 리듬이 살아 있어. 그런데 이건, 일정하게 흘러서... 누가 보고 따라 쓴 거야.”
민호는 확대경을 넘겨받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동일인이 아니라고요?”
“아니. 누군가 ‘장하율’이라는 신분을 도용하고 있어. 혹은… 그녀가 두 개의 정체성을 살고 있는 거야.”
아진은 다시 진료카드 복사본을 집어 들었다. 그녀가 말한 병원도, 그녀가 기억하는 시술도, 전부 틀렸다는 전제 하에 다시 생각한다면?
‘그녀는 정말,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던 걸까?’
하율은 말했었다. 마취 후 깨어나 보니 얼굴이 변해 있었다고. 병원 측은 그녀를 모른다고 했고, 의료기록은 전부 사라졌다고.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건대, 그녀의 ‘기억’이 애초에 조작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녀는 진짜 하율일까?
“민호야. 이 병원에서 하율 이름으로 진료받은 다른 사람 기록 없었어?”
민호가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딱 이 한 번 뿐이에요. 5년 전 진료기록한 줄.”
“그럼… 얼굴은 다른데, 이름은 같은 사람이었단 얘기네.”
“네. 주민번호도 동일합니다.”
아진은 책상 위 서류들을 모두 정리해 파일에 끼웠다. 책상 위가 텅 비자 오히려 머릿속은 더 어지러웠다.
그녀는 확신했다. 누군가 그녀를 만들었다. 하율이라는 존재를 설계하고, 과거의 흔적을 덮었다.
그리고, 그 조작의 흔적이 너무 정교해서 스스로도 자신의 진짜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다.
파일을 덮는 순간, 문득 손끝에 차가운 감촉이 스쳤다.
진료카드 복사본 아래 깔려 있던, 오래된 영수증 한 장.
연성의료센터 - 2018.04.16.
결제내역: 진료비 / 의료촬영 / 생체인식 등록(시범항목)
“이건 뭐야…”
민호가 영수증을 빼내 들었다. “생체인식…? 병원에서 그런 것도 해요?”
“일반 진료 항목은 아니야. 근데 ‘시범항목’이라는 건… 뭔가 연구적용을 했단 얘기야.”
아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민호야, 이 병원 원장 이름 뭐라고 했지?”
“문신혁이요. 5년 전 폐업 후 종적을 감췄다고 했죠.”
아진은 노트북을 켜고 빠르게 검색을 시작했다.
‘문신혁’ ‘의사’ ‘연성의료센터’ ‘생체인식’… 검색 결과는 없었다. 그런데, 폐업 직후인 2019년부터 언론에서 자주 거론된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박기문. 대성메디컬그룹의 정책 이사.
그는 연성의료센터의 컨설팅 파트너였고, 동시에 당시 보건정책연구소에서 ‘국가 생체정보 통합 시스템’ 연구 프로젝트를 지원했던 인물이었다.
“... 이게 연결된다고?”
아진은 혼잣말처럼 중얼이며 노트북을 닫았다.
“하율은, 자신의 기억과 정체성을 믿고 있지만… 실은, 누군가의 설계 아래 조립된 사람이야.”
그리고, 그 이름. ‘장하율’ 그것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아니, 처음부터 누군가의 이름이었던 걸, 빼앗아 온 것일 수도.
“이건 얼굴이 바뀐 사건이 아니라, 삶 전체가 덧입혀진 사건이야.”
아진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로등 불빛 아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림자는 늘 주인을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빛이 두 개일 땐… 그림자도 둘이 된다.’
그녀의 입가에 미세한 긴장이 스쳤다.
다음 퍼즐 조각은, 이름을 지운 사람이 아니라, 그 이름을 만들어낸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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