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과의 산책, 빗소리와 함께
La Vallée des cloches(종소리의 골짜기)’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겼다.
시계는 새벽 1시를 향해 가고 있고, 나는 겨우 오늘의 작업을 마쳤다. 어딘가 어깨는 눅눅하고, 생각은 흐물흐물해졌다. 그 상태로 곧장 침실로 향하지 않고, 나는 거실 소파에 기대앉는다. 늘 그래왔다. 하루가 끝나기 전, 나는 내 마음이 흘러간 자리를 조용히 돌아보는 습관이 있다.
그 순간, TV에서 작게 흐르던 음악이 귀를 사로잡는다. KBS 채널에서 방영 중인 ‘김가람의 리사이클’, 그중에서도 라벨을 테마로 한 산책 시간. 익숙한 프로그램, 익숙한 진행자, 그런데 낯선 곡.
그 이름조차 낯설던 곡은 모리스 라벨의 La Vallée des cloches, ‘종소리의 골짜기’였다.
이름부터가 시(詩) 같았다.
소리가 골짜기를 따라 흘러가는 모습, 혹은 골짜기에 종소리가 고요히 머무는 풍경이 상상됐다. 비슷한 음색이 반복되는데도, 묘하게 다르게 들린다. 손끝을 스치는 공기의 온도처럼 섬세하게 떨리는 음들. 한 음 한 음, 물방울처럼 떨어지고, 고요 속에서 그 여운이 번진다.
그러고 보니 지금도 창밖엔 비가 내리고 있다.
음악과 빗소리는 묘하게 닮았다.
조용한 긴장이 있고, 잔잔하지만 깊게 파고드는 울림이 있다.
어린 시절, 나는 빗소리를 듣기 위해 일부러 불을 끄고 창문 앞에 앉곤 했다. 그런 날이면 종종 이상한 상상이 따라왔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마음이 허전해지고, 내가 혼자인 것 같은, 아주 오래된 감정이 되살아났다. 지금도 그렇다.
‘종소리의 골짜기’는 단지 피아노 곡이 아니다.
그건 내 안에서 잊고 지낸 오래된 감각들을 깨우는 하나의 풍경이다.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고, 나는 그 소리를 따라 걷는다.
“언젠가, 나도 그런 음악을 듣고 싶었어.”
나직한 프로그램 내레이션이 라벨의 곡에 기대어 조용히 말한다.
그 말이 귀에 박힌다.
그렇다. 언젠가 나도 이런 음악을 듣고 싶었다.
하루가 끝나고, 내게 무언가 말을 걸어주는 듯한, 말은 없지만 마음은 있는 그런 음악.
오늘이 끝났다는 것보다, 내가 무사히 이 하루를 지나왔다는 안도.
그걸 음악이 대신 말해주는 시간.
나는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아직 잠들 수는 없지만, 아주 잠시 그렇게 마음을 누인다.
음악이, 소리가, 내 하루를 정리해 주는 것 같았다.
라벨은 파리의 종소리에서 이 곡의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복잡한 도시의 풍경 속에서도 그는 소리에 집중했고, 그 속의 질서와 고요함을 건져냈다.
아마도 그는 떠들썩한 세상에서 '조용한 의미'를 찾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음악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느낌을 받는다.
‘딸랑’, ‘땡’, ‘딩’—
종소리 하나하나가 일정한 패턴을 따르지 않고 흩어진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마음이 흐트러지지는 않는다.
되려 그런 불완전함 속에서 삶의 어떤 리듬을 느낀다.
마치 우리의 하루처럼.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순간마다 굴절되지만, 결국 이어지는 그 흐름.
그게 인생이고, 어쩌면 그게 음악인지도 모른다.
TV는 이미 다음 곡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골짜기에 머물러 있다.
소파는 점점 체온으로 따뜻해지고, 빗소리는 조금 더 깊어졌다.
내 마음은 아직도 그 골짜기를 걷고 있다.
사람은 언제 어른이 되는 걸까.
혹은, 언제 ‘충분히 괜찮은 하루’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음악 한 곡으로도 마음이 울컥할 수 있는 오늘이라면,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고,
이 하루도 잘 살았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라벨이 내게로 걸어왔다.
김가람이 이끄는 그 산책길에서.
그리고 비가 내리는 밤, 그 골짜기의 종소리는 내 마음 안에도 조용히 내려앉았다.
음악은 가끔 우리 대신 말을 한다.
소리로, 침묵으로, 공기로.
우리는 그저, 그 울림을 따라 걸으면 된다.
오늘 밤, 나는 라벨과 함께 조용히 걸었다.
소리가 멈춘 그 골짜기에서,
조금은 덜 외롭고,
조금은 더 나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