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장|찬란하기만 했던 너의 웃음

웃음이 사라진 자리에서

by Helia

피아노 소나타 1번 F sharp minor, Op.11, 2악장 "Aria"

햇살이 퍼지는 오후였다. 유리창을 타고 비스듬히 들어온 빛이 탁자 위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그날의 너도, 그 빛처럼 다정했다. 그러니까 너의 웃음은, 바람 없이도 흔들리던 커튼처럼 이유 없이 내 마음을 일렁이게 만들었다.

우리가 함께 웃었던 날들을 생각한다. 언제나 웃음이 먼저였고, 그 웃음이 대화를 시작하게 했으며, 끝내 그 웃음이 우리의 작별에조차 따스함을 남겼다는 것. 나는 그 사실이 늘 고맙고, 또 아프다.

어쩌면 나는 네가 웃을 때 가장 사랑스러웠던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지도 모른다. 마치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가도 네가 웃는 얼굴만큼은 선명하게 떠오를 것 같은, 그런 기억. 바보같이 웃던 네 모습이 오늘따라 왜 이토록 그리운 걸까.

너는 눈을 살짝 찌푸리며 웃는 버릇이 있었지. 사람들은 그런 걸 보고 '눈웃음이 예쁘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런 틀에 맞춘 표현이 싫었어. 네 웃음은 그보다 더 복잡하고 다층적이었거든. 약간의 긴장이 깃든 듯도 했고, 때로는 망설임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 안에 담긴 온기만큼은 진짜였지.

그때, 너의 웃음은 언제나 나를 구했다.

지독하게 무너졌던 어느 밤, 너는 별 얘기도 없이 커피를 들고 찾아왔었지. 그날 네가 해준 말은 단 세 마디였을 거야.
“괜찮아. 울어도 돼.”
그 말이 웃음처럼 들렸던 건 왜일까. 눈물이 차올라 시야가 흐릿해질 때, 너의 눈가에는 살짝 번진 미소가 떠올랐고, 나는 마치 안심하듯 울 수 있었다. 울음보다 웃음이 더 나를 위로한 밤. 그렇게 너는 울게 해 주면서도 웃게 하는 사람이었어.

우리는 오랜 시간 함께였지만, 동시에 짧기도 했다. 잊기엔 너무 짧았고, 잊히기엔 너무 깊었지. 네가 내 옆에 없는 지금에서야 그걸 안다. 너와 함께한 시간보다 너 없는 시간이 더 많아지면, 너를 잊을 수 있을 줄 알았거든. 근데 오히려 반대였어. 시간이 지날수록 너의 웃음은 더 뚜렷해지고, 더 자주 내 안에서 떠오르더라.

너는 어떻게 그렇게 무심한 듯 웃었을까. 아무렇지 않게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고, 꾹 닫아둔 말문을 터뜨리게 만들고, 살아 있다는 걸 느끼게 했을까.
내가 다시는 그렇게 웃을 수 있을까. 아니, 누군가 나를 그렇게 웃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그날 이후, 웃음이 사라진 자리에는 적막이 앉았다.”
어느 시인이 그랬다. 나는 그 문장이 너를 떠올리게 해. 네가 떠난 자리에 앉아 있는 건 그 어떤 울음도 아닌, 바로 웃음의 부재야. 너무 이상하지 않아? 사람이 슬플 땐 눈물이 날 것 같은데, 나는 왜 네가 없다는 사실이 웃음을 잃게 만드는 걸까.

그래도 아직은 너를 떠올리면, 조금은 웃게 돼. 그런 게 희망일까. 네가 가진 웃음의 기억이, 내가 다시 웃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는 것일까.

요즘 들어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듣게 됐어. 네가 좋아하던 곡들도, 우리가 함께 들었던 피아노 선율도. 오늘은 우연히 라디오에서 너를 떠올리게 하는 곡이 흘러나왔어. 말없이 고개를 들고 바라본 창밖, 여름이 다 가기도 전에 하늘이 조금은 차분해졌더라.
그 음악이 너의 웃음처럼 내 마음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아주 오랜만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어.
그건 네가 준 선물 같았어. 멀리 있어도, 여전히 나를 웃게 해주는 존재.
너는 그런 사람이었어.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혹시 너도 나를 떠올리는 날이 있을까. 우리가 웃음으로 넘기던 그 농담들, 서로 몰래 찍어두었던 어색한 사진들, 그리고 별것 아니었던 이야기들. 그것들이 이제는 나의 전부가 되어버렸다는 걸, 너는 알까.

어쩌면, 우리가 함께 웃을 수 있는 날이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때의 너를, 너의 웃음을 기억해.

찬란했던 너의 웃음은 지금도 내 안에 살아 있어.
그러니 나는, 아직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