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지만 눈물 나는 캐릭터, 그래서 너는 내 최애야
그 많던 캐릭터 중에 왜 하필 너였을까.
수많은 애니메이션이 있었고, 그보다 더 멋지고 정의롭고 진지한 주인공들도 있었는데.
왜 나는 그 수많은 이름 중 너 하나, ‘짱구’를 이렇게 오래 품고 있는 걸까.
아마도 그건, 너와 내가 참 많이 닮아서였을지도 모른다.
말장난을 좋아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못 참으며, 조금은 엉뚱하고 한없이 느긋한 성격.
하지만 누구보다도 섬세하고, 사랑을 알고, 가끔은 눈물 나는 철학을 툭 하고 던질 줄 아는 그 마음.
짱구야, 나의 최애. 이 긴 마음을 너에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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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너를 만난 건 초등학생 시절이었다.
텔레비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집에 울려 퍼지던 오프닝송 “떴다! 떴다! 짱구가 떴다!”를 따라 부르며 웃던 그 시절.
사실 처음엔 어른들 말처럼 너를 ‘막 나가는 아이’라고 생각했었다.
말도 안 되는 춤을 추고, 엉뚱한 말장난을 해대며, 때로는 아빠를 놀리고 엄마를 애먹이는 장면에
그저 시끄럽다고 여겼던 순간도 있었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너는 더 특별해졌어.
어쩌면 어른이 되어가면서,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는지도 몰라.
너의 천진난만함은, 아무 생각 없는 게 아니었고
너의 엉뚱한 대사는, 사실 아주 날카로운 진심의 농담이었다는 걸 말이야.
너는 여섯 살이지만, 때로는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웠고
가벼워 보이지만 삶의 무게를 아주 가볍게 떠안는 법을 알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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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보며 웃었고, 울었고, 안도했다.
현실이 너무 무겁거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버겁거나,
사람을 믿는 게 두렵던 어느 시절엔
아무도 모르게 이불속에서 너의 극장판을 반복해서 틀어보곤 했지.
『태풍을 부르는 정글에서 원시인』 편에서
마지막 장면, 원시인 친구와 헤어질 때 네가 눈물을 꾹 참으며
“바이바이, 친구야…”라고 말하던 너의 뒷모습은
지금도 잊히질 않아.
혹시 알고 있었니?
너의 그 말투 하나, 무심한 뒷모습 하나가
누군가의 인생에서는 ‘삶을 견디게 해 준 문장’이 되었단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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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구야, 너는 늘 엄마에게 혼나지만 엄마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빠를 바보라고 부르면서도 아빠가 퇴근하면 가장 먼저 뛰어가 안기지.
소중한 건 꼭 드러내지 않아도 마음 안 깊이 담아두는 네 방식이
나는 참 좋았어.
특히 나는 ‘짱아’와 함께 있는 너의 모습이 참 좋아.
동생이 태어나고, 사랑을 뺏긴 것 같아 속상해하다가도
짱아가 울면 제일 먼저 달려가주는 오빠 짱구.
“우리 짱아가 이뻐요~”라고 말하면서 간질이는 장면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어.
어쩌면 너는 웃기는 아이가 아니라, 웃게 해주는 아이였는지도 몰라.
울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삐뚤빼뚤한 얼굴로 우스운 춤을 춰주며
“웃어, 웃는 게 이쁘지~” 하고 말해주는 그런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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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나의 최애’가 생긴다는 건,
나의 일부가 그 캐릭터 속에 있다는 뜻일지도 몰라.
그래서 나는 너를 좋아한다는 말이,
사실은 ‘그 시절의 나를 좋아해 줘서 고마워’라는 말이었던 것 같아.
너의 멍한 표정,
이상한 엉덩이 춤,
미사에 빠져있던 시로 아저씨,
언제나 자장면만 시키던 철수,
작은 것에도 감동하던 유리,
몰래 사랑을 키우던 훈이,
그리고 모든 걸 보듬어주는 엄마 미사에 와 아빠 히로시까지.
너를 통해 나는 가족을 다시 생각했고,
우정을 떠올렸으며,
어른이 되는 일이란 어떤 것인지 배웠어.
너는 여전히 여섯 살이지만
나는 자꾸 나이를 먹어간다.
그런데 그럴수록 더 많이 이해하게 돼.
너는 단순한 만화 주인공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었던 어떤 순수함의 이름이었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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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모두 짱구를 떠날 줄 알았어.
하지만 아니야.
나처럼 다시 너를 찾는 사람들도 많더라.
서른이 넘어서도, 마흔이 되어도,
너의 말투 하나, 짱구송 한 줄이면 마음이 풀어지는 사람들이 있어.
그 사람들도 아마 너를 보고 웃으면서,
지나간 자기 삶의 어느 장면을 떠올리고 있을 거야.
누군가는 가족과 보던 시절을,
누군가는 짝사랑을,
누군가는 외로웠던 어느 저녁을.
그렇게 너는 누군가의 과거이자, 현재이고
다시 써 내려갈 내일이 되어주는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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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구야, 요즘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해.
모두가 뭔가를 증명하려고 애쓰고
무겁고 진지한 말들이 더 높게 평가받지.
하지만 나는 믿어.
네가 던졌던 그 아무렇지 않은 말들이,
사실은 이 복잡한 세상에서 가장 명확한 말이었다는 걸.
“세상은 말이지~ 웃으면서 살아야지~
울면 복도 도망가버려~”
지금 생각해도 참 짱구다운 명언이다.
네가 말했기 때문에 더 진실하게 들려.
그건 아마 너라는 캐릭터가
정말 진심으로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기 때문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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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구야, 고마워.
나의 지친 날들을 견디게 해 줘서.
울고 싶던 밤에 웃게 해 줘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이런 거 보면 그냥 잠자면 돼~” 하고 웃으며
내 무거운 생각을 끊어내 줘서.
너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똑같이 여섯 살로, 똑같은 말투로, 똑같은 짓궂은 표정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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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들이 생기면
그 아이에게도 너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하지만, 지금은 그저
내 마음속 어린 시절의 친구로,
나의 최애로,
가장 따뜻하고 유쾌한 존재로
너를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어.
짱구야,
앞으로도 지금처럼 살아줘.
똑같은 옷, 똑같은 얼굴, 똑같은 짓을 하면서
세상을 웃게 해 줘.
그게 너니까.
내가 사랑한,
그리고 지금도 사랑하는
나의 최애, 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