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말하지 못한 마음이 끝내 택한 길이었다
문창귀인.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단어다. 문(文)은 글, 창(昌)은 번성, 귀인(貴人)은 귀한 사람. 사주명리학에서는 이 단어를 가진 자를 “글에 재능이 있고 문장력이 뛰어나며 말과 글로 인생의 복을 얻는 이”라 말한다. 나는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이상하리만치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아주 오래전 잃어버린 이름을 다시 찾은 것처럼, 내 안의 무언가가 고개를 들며 ‘그래, 너야’ 하고 속삭이는 듯했다.
사람들은 흔히 글쓰기의 재능을 타고난 기질로 본다. 하지만 그 재능이라는 것이 꼭 화려한 단어 선택이나 문장력, 논리력 같은 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 감정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때, 나는 글로 흘려보낸다’는 고백, 그 소박한 감각이 글쓰기를 가능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밤의 마음, 사소한 하루의 풍경,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사람의 말투 하나에도 오래 멈춰 서는 마음. 그런 감정의 파편을 놓치지 않고 붙들어 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문창귀인의 기운을 품은 이가 아닐까.
나도 그랬다. 어릴 적부터 사람들 앞에서는 말을 더듬고, 감정을 곧장 표현하지 못하던 내가 있었고, 그 대신 작은 일기장에 말하지 못한 감정들을 하나씩 적었다. 하루 종일 친구에게 듣고 싶었던 말, 혼났던 날의 억울함, 아무도 몰랐던 자랑 하고픈 순간들. 그런 것들이 내 글의 시작이었다. 누가 봐도 초라하고 유치했을 그 글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그 모든 밤들이 고맙다.
문창귀인을 타고났다는 건, 곧 세상과 조금 비스듬히 살아가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말보다는 글이 편하고, 사람보다는 사물의 감정에 먼저 이입하는 사람. 모두가 웃고 있는 순간에도 웃지 못하는 기분을 알아채는 사람. 세상이 너무 빠르다고 느끼며,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 자책하는 사람. 그 외로움과 느림을, 그리움과 서러움을 종이에 옮겨 적어보는 것. 그게 우리가 하는 일이었다. 그게 문창귀인의 삶이었다.
가끔은 생각한다. 글이 나를 살렸다고. 표현하지 못한 감정이 가슴에만 쌓여 있었더라면, 나는 무너졌을 것이다. 아무리 소리쳐도 닿지 않는 세계에서, 오직 글만이 나의 진심을 들어주는 유일한 통로였다. 누군가는 편지를 썼고, 누군가는 일기를 썼고, 누군가는 SNS에 글을 올렸다. 우리는 모두 문장의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쓰지 않았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글에는 신기한 힘이 있다. 처음엔 나를 구하려 썼던 문장이, 어느 날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지기도 한다. 나는 그걸 몇 번이고 경험했다. “그 글을 읽고 울었어요.” “지금의 나를 위로받은 것 같았어요.” “마치 내 얘기 같았어요.” 그런 말들은 마법처럼 힘이 되어, 다시 한 줄을 쓰게 한다. 아무도 읽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던 글이, 누군가에겐 하루를 버티게 만든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지 모른다.
문창귀인은 반드시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며 한 번쯤은 문창귀인을 만난다. 갑작스레 찾아온 영감처럼, 잠들기 전 침대 맡에서 떠오른 한 문장처럼, 버스 창밖을 바라보다 눈물과 함께 터져 나온 말처럼. 그 순간, 글을 쓰는 모든 이의 곁에는 보이지 않는 귀인이 앉아 있다. 마치 말을 걸듯, 마음을 건네듯, “이걸 써보지 않을래?” 하고 속삭인다.
그러고 보면, 글을 쓰는 일은 혼자 하는 것 같아도 늘 누군가와 함께하는 일이다. 책을 펼쳐 읽어주는 독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친구, 한 문장을 붙잡고 되새겨보는 낯선 이의 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몰랐던 나의 마음. 문창귀인은 그 마음의 깊은 곳에서 조용히 날 지켜보며 기다린다. 오늘도 글을 쓸 것인지, 그만둘 것인지, 잠시 쉬어갈 것인지, 모든 선택 앞에서 ‘너답게’라고 말해주는 존재다.
세상은 빠르다. 누구는 10만 독자를 모았고, 누구는 책을 출간했으며, 누구는 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 모두가 문창귀인의 기운을 타고났다고는 말할 수 없다. 진짜 문창귀인은 기록되는 숫자보다, 기억되는 마음을 더 소중히 여긴다. 몇 명이 봤는지가 아니라, 단 한 사람의 인생에 스며들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는가. 그것이야말로 문창귀인이 우리에게 부여한 소명 아닐까.
때로는 다 쓰고 나서도 ‘이 글이 무슨 소용이 있지’ 싶은 날도 있다. 문장이 맘에 들지 않아 자꾸 지우고, 다시 써봐도 도돌이표처럼 제자리로 돌아오는 날들. 하지만 돌아보면, 그런 순간들이 오히려 가장 나다운 글을 남기곤 했다. 꼭 잘 써야만 의미 있는 글이 되는 건 아니다. 정직하게, 마음을 담아 쓰는 글은 언젠가 반드시 누군가의 삶을 흔들게 된다. 단지 그 시기가 아직 오지 않았을 뿐이다.
문창귀인, 그 이름에는 어떤 마법 같은 울림이 있다. 이 단어를 입에 올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자세를 가다듬게 된다. 어쩌면 나도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까. 오늘 쓴 이 문장이, 오늘따라 무너질 것 같은 그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품으며 펜을 들 때, 우리 모두는 이미 문창귀인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쓰는 사람 곁엔 언제나 귀인이 있었다.
그 귀인은 당신의 마음 안에 있었다.
그리고 당신이 계속 글을 쓰기로 결심한 오늘,
문창귀인은 다시 당신 곁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