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re Summer Stays

After the Season.

by Helia

기억이란 참 묘하다.
일어난 지 오래된 일인데도 여전히 눈을 감으면 그 순간의 냄새와 온도가 되살아난다. 바람의 방향까지 선명하게 떠오르는 밤이 있다. 사람들은 계절이 바뀌었다고 쉽게 말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여름 안에 머물고 있는 것만 같다.

너를 처음 만난 것도, 마지막으로 본 것도 여름이었다.
처음 만난 날은 유난히 더운 날이었지. 그늘 하나 없는 거리에서, 너는 물 한 병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내 앞에 나타났고, 나는 그런 너에게 말을 걸면서도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땀범벅이었던 얼굴, 그 속에 있던 낯선 따뜻함. 이상하게 너의 첫인상은 어설펐지만 오래 남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여름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매일이 영화 같았던 건 아니었지만,
너와 함께한 날들은 확실히 계절보다 느리게 흘렀다.
동네 공원의 벤치, 얼음이 가득 든 커피, 푸른 하늘 아래 펼쳐졌던 맨발의 바닷가. 그 속에서 너는 내 옆에 있었고, 나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하루가 충분했다. 네가 웃을 때마다 나는 어쩐지 안도했고, 네가 조용할 때면 괜히 눈치를 봤다. 감정이란 건 참 솔직해서,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결국 표정과 말투 사이로 드러나고야 만다.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마음들이 있다.
그리고 그건 여름이라는 계절과 어울릴 때 더 또렷해진다.
햇빛이 너무 강하면 그림자도 또렷하듯, 너와 함께한 그 여름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명암을 남겼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세계를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간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짧은 스침이 내 삶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는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안다.

그해 여름의 마지막 날,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걸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날씨였고, 공기 중에 어딘가 쓸쓸한 기운이 감돌았다. 너는 끝까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묻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그렇게, 말없이 이별했다. 손을 흔들지도 않았고, 안아주지도 않았다. 그냥, 서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을 뿐이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들처럼. 마치 서로의 계절이 아니었던 사람들처럼.

그 이후로 많은 여름이 지나갔다.
햇살은 여전히 뜨겁고, 세상은 여전히 분주하다.
사람들은 또다시 반팔을 꺼내 입고, 아이스크림을 들고 거리를 걷는다. 하지만 나에게 여름은 그때의 여름, 너와 함께했던 그 계절에서 멈춰 있다. 모든 여름이 그 여름의 복사본처럼 느껴지고, 모든 바다는 너와 갔던 그 바다의 잔상 같다.

문득문득 너를 떠올린다.
무작정 웃던 표정, 괜히 진지하던 말투, 피곤할 때마다 조용히 내 어깨에 기댔던 모습.
어쩌면 사랑이라는 감정보다 그 시절의 공기가 먼저 떠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속에 너는 항상 있었다. 아직도 여름밤이면 네가 앉아 있을 것만 같은 벤치 앞을 맴돌게 된다.
왜 그리 쉽게 끝났는지, 왜 그토록 조용하게 흩어졌는지.
되묻게 된다.

하지만 돌아보면, 우리에겐 그런 이별이 어울렸던 것 같다.
극적이지도 않고, 감정적으로 폭발하지도 않은, 조용하고 덤덤한 이별.
그래서였을까. 끝났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지금도 어디선가 너는 나와 같은 여름을 기억하고 있진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젠가 우연히 다시 마주친다면, 우리는 어떤 표정으로 인사할까.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들처럼 웃게 될까, 아니면 조금은 서먹한 눈빛을 나누게 될까.

사랑은 끝나도, 그 사랑이 피어났던 계절은 계속된다.
그리고 나는 아직 그 여름을 산다.
끝난 계절인데도, 마치 끝나지 않은 것처럼.
더 이상 네가 곁에 없는데도, 여전히 네가 있을 것만 같은 계절 속에서.
그렇게 나는 여름을 살아간다.

그러니까,
It was a summer that never really ended.
그 여름은, 정말로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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