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about times

지금 머무는 연습

by Helia

시간은 언제나 곁에 있었다.
말이 없고, 손이 없고, 표정도 없는 그것이
나보다 먼저 왔고, 나보다 더 오래 남는다.
나는 그 안에서 늙고, 사랑하고, 후회하고,
마침내 내 시간을 떠나보낼 준비를 한다.

처음으로 시간을 의식한 건
어린 시절, 할머니의 부엌에서였다.
햇살이 기울던 늦은 오후,
시계 초침이 째깍거리는 그 부엌에
나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된장을 푸고 계셨고,
나는 나뭇결이 갈라진 식탁에 손가락을 눌러가며
시간이란 걸 처음으로 기다려보았다.
언제 밥이 되는지, 언제 엄마가 전화하는지,
언제 내가 조금 더 자랄 수 있을지.

시간은 늘 그런 식이었다.
무언가를 기다리게 만들었다.
‘아직’이라는 말 앞에 갇히게 했고,
‘언제쯤’이라는 말로 희망을 포장하게 했다.

나의 유년은
늘 ‘기다리는 시간’으로 가득했다.
엄마가 돌아오기를,
편지가 오기를,
아무도 나를 두고 가지 않기를.
하지만 기다림은 대부분 허사였고,
나는 조금 더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 되어갔다.

**

“그때 왜 그랬을까.”

후회는 언제나 시간이 지나서야 자란다.
그땐 마지막인 줄 몰랐고,
그땐 놓치면 안 되는 순간이었는지도 몰랐다.
사랑한다는 말을
좀 더 많이 할 걸,
고마웠다고 인사할 걸,
함께 밥 한 끼라도 더 먹을 걸.

시간은 무심하게 흐르고,
나는 그 뒤에 남아
되풀이해서 생각했다.
되돌릴 수 있다면,
단 하루만이라도.
그날, 그 밤,
그 말 한마디 전으로 돌아간다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까.

하지만 시간은
한 번도 뒤돌아 서지 않았다.
그게 삶의 잔인함이자,
동시에 은밀한 위로였다.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어쩌면
지금을 붙잡으려 애쓰는지도 모른다.

**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져.”

그 말을 믿었던 적도 있고,
아예 믿지 않았던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시간은 치유가 아니라,
버티기의 축적이라는 걸.
괜찮아지는 게 아니라
그저 무뎌지는 것이다.
아프지 않은 게 아니라
덜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나는 우는 법을 잊었고,
조용히 속으로만 울게 되었다.
사람 앞에서 울지 않는 아이가 되었고,
웃고 있는 척이 제법 익숙해졌다.

시간은 무던한 척을 가르친다.
참고, 삼키고, 감추고.
하지만 내면 어딘가에선
여전히 그날의 내가 울고 있다.

**

시간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은
잃어본 사람이다.
사랑을, 가족을, 목소리를
돌이킬 수 없이 떠나보낸 사람.
그들은 안다.
시간이 언제나 곁에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 순간은 단 한 번 뿐이라는 것을.

나는 할머니의 등뼈처럼 굽은 뒷모습이
가끔 기억 속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된장국을 끓이던 손,
부스스한 흰 머리칼.
그 시간은 오래전 일인데도
놀랍도록 선명하다.
마치 어제 찍은 사진처럼.
그리고 그 기억이
나를 다정한 사람으로 만들어왔다.

**

요즘은 시간을 기록하는 대신
감정을 남긴다.
몇 시에 만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시간에 어떤 눈빛을 주고받았는가.
무슨 말을 했고,
그 말이 어떻게 마음속에 박혔는가.

시간은 숫자가 아니다.
느낌이고, 기억이며,
때로는 냄새다.
따뜻한 국밥의 향기,
겨울 이불의 체온,
창밖에서 불어오던 바람.
그 모든 감각이
한 사람의 시간을 만든다.

**

나는 이제
시간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안에 머무르려 애쓴다.
지금 이 말,
지금 이 글,
지금 이 창밖의 빛을
다시는 오지 않을 ‘한 번’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오늘의 나는
할머니와 마주 앉아 밥을 먹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누군가와 나란히 앉아
말없이 웃는 일이
얼마나 큰 시간의 선물인지
조금 더 자주 느끼게 된다.

**

결국, 이 모든 건
시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All about times.
사라지고, 흔들리고, 남겨지는
그 찰나들의 총합.
그 속에서 내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었다는 증거.

그것이면 되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오늘의 나는
어제를 품고,
내일을 기다리지 않으며
지금의 이 따뜻함을
온전히 안아본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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