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창문 아래, 네가 남긴 말

기다리지 않아도 괜찮아

by Helia

이튿날 아침,
소녀는 눈을 뜨자마자 창가로 달려갔다.
심장이 콩콩 뛰었다.
기대와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오는 묘한 아침이었다.

하지만 창틀 위는 어젯밤과 다르지 않았다.
연초꽃도, 쪽지도 그대로였다.
심지어 꽃잎에 얹힌 이슬조차 어제 그대로인 듯 보였다.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소녀는 창문을 닫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말없이 창틀에 손을 얹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괜찮아. 어쩌면 아직인 거겠지.”

**

부엌으로 내려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도
소녀의 마음은 자꾸만 창문을 향해 돌아갔다.

“얜 요즘 멍하니 있는 시간이 늘었네.”
이복언니의 말에 새어머니가 응수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길래 일에 집중을 못 해?
딴 맘 품지 마. 너는 여전히 우리 집 식구 중 맨 끝이야.”

그 말에 가슴이 퉁, 하고 울렸다.
하지만 소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시 속으로만 되뇌었다.

‘나는,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 알아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

그날 하루는 유독 길게 느껴졌다.
일을 끝내고 방에 돌아와
창문 앞에 서자,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그녀는 창틀을 조심스레 살폈다.
그리고 그 순간—
그곳엔 어젯밤과는 다른,
다시 접힌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소녀는 숨을 들이쉬었다.
손끝이 살짝 떨렸다.
그리곤 아주 천천히, 종이를 펼쳤다.

**

> “웃지 말라면서 왜 귀엽게 써.
반말 어색하다면서, 나도 그게 더 좋았어.
네 쪽지 받고 한참을 창밖에 서 있었어.
바람이 불고, 꽃잎이 네 손을 따라 움직이던 그날도 생각났고.

사실… 나, 그날 너 아니었으면 아마…
그냥 사라졌을지도 몰라.
그날 이후로 세상이 조금은 덜 차가워졌어.

너한테 뭐라고 더 말하고 싶은데
이상하게 말이 잘 안 나와.
그냥, 또 올게.
기다리지 않아도 괜찮아.
그래도… 기다려줬으면 좋겠어.”



**

쪽지를 다 읽은 소녀는
한참 동안 창틀 앞에 앉아 있었다.

‘기다리지 않아도 괜찮아.
그래도… 기다려줬으면 좋겠어.’

그 말이
파도처럼 가슴 안에 밀려왔다.

그녀는 창문을 열어
조심스레 바깥공기를 맞았다.
그저 바람일 뿐인데,
그 바람이
마치 그 소년의 말처럼 느껴졌다.

**

그날 밤, 소녀는
평소보다 조금 더 늦게 잠들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지난날 물속에서 본 그 소년의 눈.
자신이 손을 내밀었을 때,
다급하게 잡아주던 손.

그 손은 차가웠지만,
지금은 따뜻했다.

**

아침이 밝으면,
그녀는 또 연초꽃 한 송이를 꺾어
다시 무언가를 써볼 것이다.

이번엔, 조금 더 긴 말.
조금 더 솔직한 마음.

그녀는 이제 알고 있다.
꽃은 피는 시기를 스스로 정하지 않지만,
마음은 용기를 내는 순간
천천히 열리기 시작한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자신의 마음은
누군가의 말에
조금씩, 아주 조금씩
피어나고 있다는 것을.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