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지 않아도 괜찮아, 그래도…
쪽지가 사라진 줄 알았다.
이튿날 아침, 눈을 뜬 소녀는 숨도 고르지 못한 채 창가로 달려갔다.
창틀 위를 황급히 살펴보다가,
잠시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꽃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종이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바람에 날아간 건 아닐까.
괜히 어젯밤 손으로 문을 닫은 걸 후회하며,
소녀는 창틀을 따라 눈을 굴렸다.
그리고 그때,
꽃잎 뒤편에 작게 접힌 종이 한 장이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소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두 손으로 조심히 그것을 집어 들었다.
종이가 펼쳐지지 않도록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 쥔 채,
그녀는 방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
하루 종일 마음이 들떠 있었다.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도,
물동이를 옮기며도,
소녀의 머릿속은 온통 그 쪽지로 가득 차 있었다.
“얜 요즘 왜 자꾸 멍하니 있어?”
이복언니의 목소리에 새어머니가 맞장구를 쳤다.
“딴생각하지 마. 너는 이 집 식구 중 맨 끝이라는 거, 잊지 말고.”
그 말에 가슴이 콕하고 아팠지만,
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속으로만 조용히 되뇌었다.
‘그래도 괜찮아.
지금 나는,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어.’
**
밤이 찾아오고,
모두가 잠든 뒤.
소녀는 책상 위에 종이와 짧은 연필을 꺼냈다.
이번엔 인사 한 마디가 아니라
조금 더 길게,
조금 더 솔직하게 써보기로 했다.
> “네 쪽지, 몇 번이나 다시 펼쳐봤어.
그 말들 하나하나가
마치 누군가가 내 안쪽에서 조용히 등을 토닥여주는 것 같았어.
사실…
그날 너를 봤던 기억이 계속 떠올랐어.
손을 내밀었을 때 잡아주던 너의 손.
그 손이 없었다면, 나도 어쩌면 지금 여기에 없었을지 몰라.
너의 말처럼,
기다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해줬지만
나는 기다릴 거야.
기다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게.
그러니까,
네가 올 수 있는 날엔,
언제든 다시 와줘.”
글을 마치고 종이를 조심스레 접었다.
그 옆엔 오늘 가장 예쁘게 핀 연초꽃을 골라 함께 놓았다.
**
그녀는 창문을 열어
살며시 바깥바람을 맞았다.
밤공기는 아직 차가웠지만,
그 안에 어떤 따스한 기척이 스며 있는 듯했다.
꽃잎이 바람에 흔들렸다.
마치, 누군가가 다녀간 자리에 남긴 인사처럼.
소녀는 그 순간,
살아 있다는 것이
단지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고,
또 누군가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 모든 순간들이
가시덤불 속에서도 피어나는
작은 꽃 같다고,
그녀는 그렇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