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두 번째 의뢰를 맡다.

빛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있었다

by Helia

류성민 의원과 그 일당이 구속되던 날, 서울의 밤은 유난히 조용했다.
그들의 범죄가 세상에 드러난 순간, 언론은 “윤리의 궤도를 이탈한 국가 시스템”이라 이름 붙였고, 사람들은 비로소 무언가를 똑바로 마주 보기 시작했다.

‘Project: 오버로드’는 단지 하나의 사건이 아니었다.
그건 정의가 망가진 자리에서 되살아난 기억이자, 누군가의 몸에 새겨진 고통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아진이 있었다.
이름 없는 피해자들을 대변하고,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진실을 드러낸 그녀는 더 이상 카메라 뒤에만 머물지 않았다.
보도사진가였던 그녀는 이제 ‘탐사보도 작가’라 불렸다.

사건 이후 아진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진실을 추적했다.
기록하고, 발로 뛰며, 어둠 속 ‘누군가’와 마주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 곁엔 민호가 있었다.

한때는 사무실의 선후배였지만, 이제는 함께 현장을 누비는 파트너.
민호는 방송국 기술정보팀의 핵심이자, 아진이 가장 신뢰하는 조력자였다.

그날 밤, 서울 외곽의 폐병원 앞.
빛바랜 간판, 찢긴 블라인드. 유리창 너머로 먼지 낀 어둠이 깔려 있었다.

“누나.”
민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알지? 같이 하는 거다. 우린 한 팀이잖아.”

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보다 먼저 마음이 움직였고, 민호는 더 말하지 않았다.
조용히 장비 가방을 열며 물었다.

“JD가 보낸 메시지, 진짜인 거야?”
“응. 암호는 예전 그대로였어. 익명 계정이라도 그 방식은 같았어.”
아진은 노트북을 열고 화면을 가리켰다.

> ‘두 번째 의뢰. 어둠은 아직 깊다.
장소: 구도심 폐병원. 시간: 자정.
당신의 눈과 귀가 필요하다. – JD’



둘은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
‘JD’— 얼굴은 없고 존재만 남은 이름.
과거 결정적인 증거를 넘겼던 미지의 협력자. 하지만, 그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이번엔... 얼굴 보여줄까?”
“글쎄. 그럴 수도 있고, 그냥 또 다른 퍼즐을 던지는 걸 수도 있고.”
“그래도, 누나 혼자 보낼 순 없지.”

아진은 렌즈를 닦으며 가볍게 웃었다.
“그래서 일부러 몰래 가려 했는데.”
“그래서 일부러 먼저 나와 있었지.”

새벽안개가 골목 안을 감쌌고, 머리 위 街燈이 깜빡이며 희미한 빛을 흘렸다.
서로 말은 적었지만, 마음은 꽤 오랜 시간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건물 안쪽에서 느껴지는 기척.
민호는 숨을 고르며 다시 말했다.
“어떤 일이든, 우린 같이 간다. 그게 룰이잖아.”

“민호.”
아진이 고개를 돌렸다.
“응?”
“… 고맙다.”
“난 누나의 보디가드잖아.”

그 한마디에, 아진의 어깨가 아주 잠깐 흔들렸다.
혼자였던 시간들이 문득, 덜 외롭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두 사람은 조용히 폐병원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깊어진 그림자, 꺼지지 않은 진실.
빛은 아직 멀었지만, 누군가는 그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이것은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제 막 진실의 두 번째 막이 올라간 참이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Helia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쌓습니다. 기억과 계절, 감정의 결을 따라 걷는 이야기꾼. 햇살 아래 조용히 피어난 문장을 사랑합니다." 주말은 쉬어갑니다.

549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42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48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