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로 건넨 위로의 시간
추천 클래식: 루치아노 파바로티 Luciano Pavarotti - Nessun Dorma (from Puccini’s 「Turandot」)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세상에 목소리 하나로 사랑을 전했고, 한 줌의 소리로 평화와 희망을 노래했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보다도, 조용한 무대 뒤에서 더 많은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를 사람. 루치아노 파바로티, 그를 처음 안 건 중학생 시절이었다. 클래식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이탈리아어의 선율, 낯설지만 깊고, 거대하면서도 따뜻한 울림이었다.
나는 그 이름을 한참 뒤에야 외웠다. 파바로티. 이름조차 노래처럼 부드럽게 흘렀다. 누군가를 목소리로 위로할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 목소리는 마치 손을 내밀 듯 다가왔고, 내 마음속 어딘가에 둥지를 틀었다. 아마 그날 이후였을 것이다. 클래식에 마음을 빼앗긴 게.
그는 전설적인 테너였다. 'Three Tenors'의 일원이자, 대중과 가장 가까웠던 오페라 가수. "Nessun Dorma" 한 곡으로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남자. 그러나 그를 단지 성량 좋은 테너로만 기억한다면, 너무 많은 걸 놓치는 것이다. 파바로티의 진짜 아름다움은 무대 위에서 '혼자' 노래하는 데 있지 않았다. 그는 늘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 동료 가수와, 오케스트라와, 그리고 관객과. 그는 음악을 통해 세상과 대화했다.
파바로티의 인생은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다. 그의 시작은 평범했다.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빵집을 하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소년은 원래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음악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아버지 역시 아마추어 테너였고, 부자는 함께 음악을 나누며 자랐다. 그 후 파바로티는 교사 생활을 하다 본격적으로 음악 공부를 시작했다. 그의 데뷔는 그리 화려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는 그 무게를 견디는 목소리가 되어갔다.
그의 목소리는 다정함이었다. 부드러움과 힘이 공존하는, 마치 울고 웃는 인간의 얼굴 같았다. 그가 노래할 때마다 무언가 가슴이 조였다. 삶이 너무 복잡할 때, 그의 음성은 단순했다. 외로울 때, 따뜻했다. 무너지기 직전일 때,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그것이 파바로티였다.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노래할 때, 사람들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단 한 번의 공연으로, 단 한 곡의 아리아로 누군가의 밤을 덜 외롭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이 곧 그의 사명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인생의 굴곡을 피할 수는 없었다. 병마와 싸웠고, 사생활 문제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노래했다.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나서서도, 마이크 앞에서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도.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는 사람. 그가 마지막으로 불렀던 "Nessun Dorma"에는 삶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사랑, 고통, 희망, 그리고 작별.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의 음악은 여전히 살아있다. 매년 열리는 추모 콘서트, 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그의 노래, 클래식 초보자들에게 추천되는 첫 아리아. 그의 존재는 음악이라는 언어로 다시 태어나, 여전히 누군가의 가슴을 두드린다. 나 역시 그런 순간들을 종종 마주한다. 어떤 날은 이유 없이 마음이 힘들 때, "Caruso"를 듣는다. 어떤 날은 새로운 글을 쓰기 전에 "Ave Maria"를 틀어놓는다. 그러면 잠시나마 내가 나로서 안전해지는 느낌이 든다.
파바로티를 이야기하며 떠오르는 한 문장이 있다. ‘진짜 거장은 기술보다 마음을 먼저 울린다.’ 그는 그랬다. 엄청난 고음이나 테크닉보다, 그의 음악이 남긴 건 '마음의 울림'이었다. 그는 노래했지만, 사실은 기도했고, 속삭였고, 위로했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내 삶 속에서도 파바로티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혹은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말없이 곁에 있다가, 힘겨운 순간에 가만히 노래처럼 다가오는 사람.
우리는 모두 언젠가 멈출 목소리를 갖고 살아간다. 하지만 파바로티는 자신의 목소리를 하나의 세계로 만들었다. 그 울림은 지금도 계속된다.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마음에서도.
그러니 오늘은 파바로티의 목소리로 하루를 끝내보는 건 어떨까. 눈을 감고, 조용히 “Nessun Dorma”를 틀어놓는다. 그리고 속으로 속삭인다.
“이 밤은 누구도 잠들지 않을 거야. 내일은 반드시 빛이 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