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기시감

by Helia

“전생… 그게 당신을 죽였습니다.”
그 말이 내 귓속에 떨어지는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내 앞에 서 있는 중년 남자였다.
회색빛 정장, 깔끔히 빗어 넘긴 머리, 그리고 깊은 주름 속에 감춰진 날카로운 눈빛.
그 시선이 내 속을 꿰뚫는 듯했다.

“누구시죠?”
내 목소리가 경계로 묻어났다.
그는 입꼬리를 아주 미세하게 올렸다.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당신이 그녀를 알아본다는 사실.”

그 한마디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 서하린을 말하는 건가.
무슨 뜻이냐고 묻기 전에, 그가 주머니에서 낡은 종이쪽지를 꺼냈다.
종이에는 붓글씨처럼 번진 글씨가 적혀 있었다.

달이 붉은 밤, 칼은 심장을 찾는다.

글자를 읽는 순간, 눈앞이 번쩍 뒤집혔다.

불길이 하늘을 삼키고 있었다.
바람이 피 냄새를 몰고 왔고, 콧속이 타들어갔다.
귀를 찢는 비명, 사방을 덮치는 열기, 발밑의 피가 천천히 스며드는 감각.
그 한가운데 서 있는 그녀—서하린.
피로 얼룩진 손이 칼을 움켜쥔 채, 느리게 나를 향해 다가왔다.
달빛이 칼끝을 타고 흘러내렸다.
차가운 금속이 내 가슴에 닿는 순간, 심장이 쪼개지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세현 씨!”
현실로 돌아왔을 때, 그녀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서하린.
방금 전까지 없던 그녀가, 마치 장면을 가로질러 나타난 것처럼.

“괜찮아요? 얼굴이 너무 창백해요.”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눈빛은 날카롭게 나를 스캔했다.

“혹시… 예전에—”
“만난 적 없어요.” 그녀가 단호하게 잘랐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른 뒤, 낮게 덧붙였다.
“하지만… 세현 씨를 보면 이상하게 숨이 가빠져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가방 속에서 조심스럽게 봉투 하나를 꺼냈다.
내게 건네진 봉투는 생각보다 묵직했다.
속에는 오래된 흑백 사진이 들어 있었다.
손끝이 사진을 잡는 순간, 피부로 전해지는 오래된 종이의 건조한 질감과 잔향이 전해졌다.

사진 속에는 한복을 입은 청년과 여인이 서 있었다.
청년의 얼굴은… 나였다.
그리고 그 옆의 여인은 서하린이었다.

숨이 막혔다.
사진 뒷면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1887년 11월 3일.
백 년도 훨씬 전의 기록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내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저도 모릅니다. 오늘 아침, 제 서랍 속에서 나왔어요.”

순간, 로비 밖에서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 바람 속에, 낮고 낮은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다시 시작되는군.

고개를 돌렸지만, 바람만이 회전문을 빠져나갔다.
다시 하린을 보았을 때, 그녀의 눈동자가 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그 안에서—
내가, 피를 흘리며 무너지고 있었다.

수,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