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물든 혼례날
종소리가 울렸다.
혼례식의 북소리와 나팔 소리가 뒤엉켜 귀를 찢었다. 하얀 혼례복은 꽃잎 대신 핏방울로 물들어갔다. 불길은 궁성 위로 치솟았고, 성문은 화살비에 무너져 내렸다.
나는 현조였다. 왕의 곁을 지키던 충신의 장남. 오늘은 하랑과 혼례를 올리는 날이었다. 그러나 가마가 채 안에 들어오기도 전에 성문이 박살 나고, 칼날이 사방에서 번쩍였다.
혼란 속에서 나는 그녀를 지키려 달려갔다. 숨 가쁘게 내 이름을 부르는 하랑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끝이 맞닿는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왜…?” 내가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소매 속에 숨겨 두었던 짧은 칼을 번개처럼 꺼냈다. 눈빛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너를… 용서할 수 없어.”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와 함께, 칼끝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숨이 끊어질 듯, 심장이 비명을 질렀다. 나는 피를 토하며 뒤로 비틀 거 졌다.
하랑의 얼굴이 눈앞에서 흔들렸다. 그 속엔 슬픔과 증오, 그리고 오래된 원한이 뒤엉켜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혼례날의 참사가 아니었다.
그녀는 나를 죽이러, 오늘 이 자리에 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