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장|한 번쯤은 괜찮다, 그 순간 무너진다

스며드는 그림자

by He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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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 The Art of Fugue BWV 1080


타락은 폭발처럼 쏟아지지 않는다.
가랑비처럼 스며든다.

벽 틈새를 타고 스치듯 흐르는 물방울이 오래된 벽돌의 살결을 조금씩 깎아내듯, 그것은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다가온다. 한 번쯤은 괜찮겠지, 오늘만은 예외로 하자, 이 정도는 누구나 하는 일… 마음속 경계선이 연필 자국처럼 옅어진다. 경계가 흐릿해질 때, 사람은 아직 제자리에 있다고 믿지만 발끝은 이미 어둠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첫 발은 너무 가벼워서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날, 돌아본 길 위에는 익숙하던 풍경이 사라져 있다. 발자국은 빗물에 씻겨 사라지고, 남은 건 방향을 잃은 발끝이 허공에 매달린 감각뿐이다.

타락은 종종 꽃의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아스팔트 틈새에 돋아난 들꽃처럼, 뿌리는 깊숙이 숨어 있으나 표면은 향기와 빛으로 눈을 속인다. 우리는 그 꽃 앞에서 스스로를 달랜다. 이게 정말 잘못일까? 아니야, 아직은 괜찮아. 그 부드러운 자기 위안이 입술을 스칠 때, 이미 첫 문턱은 넘어섰다.

시작은 사소하다.
버려진 동전 하나를 손에 쥐는 일, 미소로 감싼 작은 거짓말, 아무도 모르게 감춘 조각 같은 비밀. 그 소소함이 주는 안도감은 꿀처럼 달다. ‘아무도 모를 거야.’ 그 달콤함이 면허가 되고, 면허는 조금씩 더 넓은 땅을 차지한다. 죄책감은 둔해지고, 심장은 더 이상 경고음을 내지 않는다.

그때부터 타락은 스스로를 ‘적응’이라 부른다. 마치 살아남기 위해 변한 것뿐인 듯, 시대에 맞춰진 유연함처럼 포장한다. 하지만 그 적응은 부식된 철처럼 천천히 속을 먹어치운다.

어느 날, 거울 앞에 선 나는 나 같지 않은 얼굴을 마주한다. 눈동자는 탁해지고, 웃음은 메마르며, 목소리엔 싸늘한 결이 묻어난다. 나를 오래 지켜본 이가 묻는다.
“요즘 너, 예전 같지 않아.”

나는 얇게 웃으며 답한다.
“그건 네가 나를 몰라서 그래.”

말 한 줄 안에 이미 거짓이 깃든다. 진심과 위장이 뒤엉켜, 스스로도 어느 것이 본심인지 모른다. 웃음 뒤편에는 금이 간 거울처럼, 외면한 균열이 번지고 있다.

그 거울 속의 나는, 낯선 집 거실에 서 있는 방문객 같다. 전등은 켜져 있고 가구는 제자리에 있지만, 바닥은 보이지 않게 기울어져 있다.

타락의 치명성은 그 달콤함에 있다. 한때 죄책감을 삼켜야만 얻을 수 있던 이익이 이제는 손을 내밀면 저절로 들어온다. 편리함, 부, 쾌락, 권력… 모두 빛나는 껍질을 두르고 부드러운 손길로 목덜미를 감싼다. 그 촉감은 오래된 벨벳처럼 중독적이다.

깊은 밤, 첫 잔은 조심스럽지만 두 번째 잔은 목이 스스로 찾는다. 경계심은 풀리고, 과거의 원칙은 무거운 짐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문득, 내가 한때 경멸하던 모습과 겹쳐져 있음을 알지만 눈을 돌린다.

타락한 사람은 변명에 능하다. 유머로 감추거나, 냉소로 무장하거나, 동정의 옷을 걸친다. 자신을 피해자로 부르거나, 세상의 부조리를 탓한다. 그러나 그 모든 언어 속에서 빠진 단 하나의 고백은 이것이다. 나는 선택했다.

그 선택을 가리기 위해 침묵을 배운다. 침묵은 편리하다. 말이 없으면 증거도 남지 않는다. 침묵은 책임을 흐리고, 죄책감을 퇴색시키며, 타인의 질문을 무디게 만든다. 그리고 그 고요 속에서 타락은 안전하게 숨을 쉰다.

끝은 없다.
다만 돌아갈 수 없는 순간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문득 마주친 시선, 우연히 들은 한마디, 먼 과거의 장면일 때가 많다. 그 짧은 순간,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음을 깨닫는다. 돌아가려 해도 길은 사라져 있다.

그 자리에서 느끼는 것은 죄책감이 아니라 텅 빈 공기다. 오래 방치된 우물처럼 깊고, 들여다볼수록 어둠이 짙어진다.

타락은 언제나 흉측한 얼굴을 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성공의 옷을 걸친다. 세상은 결과를 본다. 수단이야 어떻든, 높은 곳에 선 자에게 박수가 쏟아진다. 사람들은 그를 부러워하고, ‘현명하다’고 치켜세운다. 그 박수 소리는 또 다른 이들을 문턱 너머로 부른다.

이렇게 타락은 전염된다. 박수와 찬사, 성공담은 바이러스처럼 퍼지고, 사람들은 자신의 경계를 느슨하게 푼다. ‘나도 저 정도는 괜찮겠지.’ 그 생각은 너무 자연스럽게 다음 걸음을 재촉한다.

타락을 완전히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어느 지점에서 멈출 수 있느냐가 다를 뿐이다. 멈춤은 두려움이 아니라 용기에서 온다. 그 용기는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손해를 감수하며, 고립을 견디는 힘이다.

나는 믿고 싶다. 언젠가 거울 속 낯선 나를 마주했을 때, 그 낯섦을 덮어두지 않고 냉정하게 묻는 날이 오기를.
“너는, 정말 이 길을 계속 가고 싶은 거야?”

그리고 그 질문에, 부끄럽지 않은 대답을 건넬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