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마차가 오기 전에

붙잡는 눈, 놓으려는 손

by Helia

소녀는 숨이 막힌 듯 굳어 섰다.
외할머니의 손이 팔목을 단단히 감싸고 있었다.
그 손끝은 따뜻했지만, 놓지 않겠다는 굳은 힘이 스며 있었다.

“얘야… 이렇게 커버렸구나.”
목소리는 떨렸지만, 눈빛만큼은 결연했다.
“너를 찾으러 온 길이 얼마나 멀었는지 아니? 이제 그만 가자.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소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바람이 느티나무 잎을 뒤집으며 은빛 면을 반짝였다.
그 그늘 안쪽, 소년이 몸을 숨긴 자리가 보였다.
그러나 그곳엔 이미 아무도 없었다.

“물은… 길어야죠.”
소녀가 조심스레 말했다.
외할머니의 눈빛이 잠시 부드러워졌다.
“그래, 물은 길어야지. 하지만 오늘이 마지막이다.”

우물가로 가는 길이 오늘은 유난히 짧았다.
외할머니의 발걸음이 빨라서였는지, 아니면 소녀가 자꾸 뒤를 돌아봤기 때문인지.
혹시나 느티나무 그늘 속에서 소년이 다시 나타날까,
혹시나 바람이 그의 이름을 실어 올까—그러나 골목마다 스쳐가는 건 바람뿐이었다.

물을 길어 돌아오자, 부엌 쪽에서 발소리가 다가왔다.
문가에 서 있던 건 새엄마였다.
차갑게 가늘어진 눈매로 외할머니를 훑어보더니, 낮게 물었다.

“누구시죠? 왜 우리 집 아이 손을 잡고 계신 거죠?”

외할머니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내 손녀요. 데려갈 터이니, 그리 아시오.”

새엄마의 입술이 굳었다.
잠시 말을 찾는 듯했지만, 외할머니의 단호한 시선에 숨이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
그 옆에서 이복언니가 놀란 눈으로 소녀를 바라봤다.
그 눈빛 속에는 붙잡고 싶은 마음과 내보내고 싶은 마음이 묘하게 섞여 있었다.
입술이 달싹였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시선을 돌렸다.

외할머니는 소녀의 손을 이끌고 대문을 열었다.
“내일 아침, 마차가 올 거다. 필요한 건 오늘 밤 안에 다 싸거라.”

그 말이 마당 끝까지 번져갔다.
문이 닫히자, 집 안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소녀는 방으로 들어와 오래된 보따리를 꺼냈다.
손끝으로 헝겊을 만지작거리다, 창밖 느티나무를 바라봤다.

그 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람이 잎을 뒤집는 소리가,
아직 보이지 않는 마차 바퀴 소리처럼,
멀리서부터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