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나기로 한 약속
마차의 바퀴가 자갈 위를 덜컥이며 굴렀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말의 콧김에 섞여 하얗게 번지고, 풀잎마다 맺힌 이슬이 흔들릴 때마다 은빛을 흩뿌렸다.
소녀는 창문 쪽으로 몸을 기댄 채, 양손에 작은 종이를 꼭 쥐고 있었다.
종이는 밤새 땀과 체온을 머금어, 가장자리까지 부드럽게 젖어 있었다.
이렇게 갑자기 떠나도 되는 걸까…
그 애는 내가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될까?
마음속 질문이 끝도 없이 꼬리를 물었다.
마차가 골목을 돌 때, 소녀의 시야에 낯익은 바위가 들어왔다.
그곳은 둘만의 비밀 장소였다.
햇빛보다 먼저 약속을 품고 있던 자리.
소녀의 가슴이 두근거리며 입술이 저절로 열렸다.
“외할머니… 잠깐만 세워 주세요. 저기, 잠깐만.”
외할머니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마차는 바위 앞에서 멈췄고, 말들이 땅을 긁으며 숨을 골랐다.
소녀는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풀잎이 발목을 스치고, 차가운 이슬이 옷자락 끝을 적셨다.
바위 앞에 서자, 온 세상이 잠든 듯 고요했다.
밤새 써 내려간 글씨가 종이 위에서 은빛으로 반짝였다.
> “나는 돌아올 거야.
네가 여기 있다면, 우리는 다시 만나.”
그 한 줄 한 줄이, 소녀의 심장에서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대답처럼 울렸다.
그녀는 종이를 조심스레 접어 바위 밑 틈새에 넣고, 작은 돌멩이로 눌러 덮었다.
손끝이 시렸지만, 마음은 이상하게도 따뜻했다.
그때였다.
바닥을 차는 소리.
아주 먼 곳에서 시작된 듯했지만, 점점 커지고 있었다.
하나의 발자국이 아니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리듬이 겹쳐, 마치 한 곡의 불안한 음악처럼 울렸다.
소녀가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옥화야! 잠시만, 기다려!!”
익숙하면서도 낯선 울림이 공기를 가르며 달려왔다.
그동안 ‘야’, ‘너’로만 불리던 이름이, 처음으로 누군가의 입술에서 또렷하게 피어났다.
먼지와 이슬이 섞인 새벽길 끝에서 두 그림자가 보였다.
앞에는 숨이 턱까지 차오른 소년, 그 뒤에는 얼굴이 달아오른 이복언니가 있었다.
이복언니는 헐떡이며 소녀 앞까지 와서 멈췄다.
“너… 이렇게 갑자기 가버리는 게 어딨어?
인사도 채 못했는데… 이렇게 보낼 수가 없었어.”
숨을 고르며, 그녀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동안 못되게 굴어서… 미안해.
잘 가. 잘 살아.”
소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말속엔 원망도, 질투도, 냉소도 없었다.
그저 늦게 찾아온 진심이 있었다.
그 말이 가슴속을 울리고 있을 때, 소년이 다가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의 발걸음은 급했지만, 손끝은 망설임 없이 소녀를 끌어안았다.
숨과 숨이 부딪히고, 심장이 마치 하나처럼 뛰었다.
“잘 가… 그리고…”
소년의 목소리는 낮게 떨렸지만, 그 속의 단어는 또렷했다.
“좋아해.
다시 만나자. 우리.
언젠가… 이곳에서.”
바람이 세 사람을 스쳤다.
풀잎 위의 이슬이 무너져 내리고, 먼 곳에서 마부가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바위 아래, 아직 젖어 있는 종이가 세 사람의 마음을 대신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소녀는 알고 있었다.
이 장면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