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느티나무 아래에서

다시 만난 손

by Helia

아침 공기는 유난히 맑았다.
이슬은 풀잎 끝에서 작은 구슬처럼 반짝였고, 바람은 그 위를 스치며 은빛 파편을 흩뿌렸다.
모든 것이 고요했지만, 소녀의 가슴은 이유 모를 예감으로 잔잔히 흔들렸다.
오늘은, 어제와 다를 것이다—그렇게 믿었다.

물동이를 들고 마당을 나서려던 순간, 부엌 문가에서 이복언니의 시선이 등을 찔렀다.
“괜히 들떠서 뭐 하려는 거야?”
비아냥 섞인 목소리가 공기 속에 길게 늘어졌다.
소녀는 대꾸 대신 물동이를 세게 움켜쥐었다. 손끝이 희게 질렸다.

골목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느티나무 그림자가 길 위로 길게 드리웠고, 그 아래 익숙한 실루엣이 서 있었다.

소년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손에 든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이 스치자, 얇은 종이가 그의 손에서 부드럽게 떨렸다.
아침 햇살 속에서, 소녀가 쓴 글씨가 또렷하게 살아 있었다.

소녀는 걸음을 멈췄다.
심장이 빠르게 박동하며 귓속을 울렸다.
소년이 고개를 들었다.

“네가 쓴 거지?”
짧고 단호한 목소리.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끝내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소년이 천천히 다가왔다.
나뭇잎이 바람에 뒤집히며 은빛 면을 드러냈고, 햇빛이 그 사이로 부서져 두 사람 얼굴 위를 스쳤다.

“나… 기다렸어.”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오래 참아온 숨결이 묻어 있었다.

소녀는 품에서 새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소년의 눈이 그것을 따라 움직였다.

그 순간—멀리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묘한 박자.
그러나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바람이 잠시 멎은 듯, 공기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소년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종이를 쥔 채 소녀에게 바짝 다가왔다.
“내일, 같은 시간… 꼭 와.”
그리고 느티나무 그림자 속으로 몸을 감췄다.

골목 모퉁이에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햇빛 속으로 한 발, 또 한 발—
주름진 두 눈이 소녀를 똑바로 바라봤다.

“얘야… 드디어 찾았다.”
거친 숨과 함께, 굵은 핏줄이 도드라진 손이 소녀의 팔목을 덮었다.
따뜻하면서도,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힘이 느껴졌다.

숨이 막히는 순간, 소녀는 알아차렸다.
이 눈빛은 돌아갈 길이 하나뿐임을 말하고 있었다.

외할머니였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