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글감

왜 '프롤로그' 일까?

by Helia

아침이 열리는 순간은 언제나 작고 소박하다. 알람 소리보다 먼저 스며드는 빛, 창문을 스치는 바람, 입술에 닿는 첫 모금의 물. 그 짧은 찰나가 하루의 첫머리가 된다. 글쓰기 어플에 종종 눈에 띄는 오늘의 글감, ‘프롤로그’라는 단어는 그래서 낯설지 않다. 누구나 날마다 이야기의 서두에 서 있기 때문이다.

‘프롤로그’라 불리는 말에는 단순한 시작 이상의 기운이 있다. 아직 쓰이지 않은 페이지를 향한 예고, 어쩌면 예감에 가까운 것. 태어남이 생의 도입부였고, 첫사랑은 성숙의 문 앞이었으며, 어떤 이별은 새로운 장을 여는 서두였다. 우리는 늘 작은 서막 위에 서 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평범한 하루조차 무대 위에서 막이 오르는 장면처럼 느껴진다.

아침의 일상은 작지만 분명한 도입부다. 커피잔 위로 피어오르는 김, 버스 창가에 부딪히는 햇살, 길모퉁이에 고양이가 남긴 발자국. 그 사소한 장면들이 모여 오늘의 시작을 이룬다. 위대한 선언이나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이렇게 작은 조각들이 하루의 첫 장을 쓰고 있다.

문학에서의 서두가 독자의 시선을 끌어당기듯, 삶의 첫머리도 우리를 흔든다. 오늘의 글감을 ‘시작’이라 붙잡는 순간, 평범한 순간은 문학적인 빛을 띤다. 길 위의 그림자, 창가를 스치는 얼굴, 낯선 사람의 웃음까지 모두 나만의 소설 속 도입이 된다. 삶이 문장이 되는 순간이다.

시작은 기대의 언어다. 첫 장을 열면 우리는 당연히 그 뒤를 상상한다. 어떤 날은 그 기대가 충실히 이어지고, 또 어떤 날은 허무하게 무너진다. 소설의 첫머리가 장엄해도 이야기가 시시할 수 있고, 반대로 조용한 도입이 뜻밖의 깊이로 이어지기도 한다. 중요한 건 그 기대가 실제로 이루어졌는지가 아니라, 기대 자체가 우리를 지탱했다는 사실이다. 시작이 있는 삶은 방향을 가진다.

글을 쓸 때 나는 늘 첫 문장 앞에서 망설인다. 그 한 줄이 흔들리면 글 전체가 흔들린다. 하루 또한 그렇다. 아침의 표정이 곧 하루의 흐름이 된다. 무심한 한숨이 문이 될 수도, 가벼운 미소가 도입이 될 수도 있다. 같은 날도 어떤 문장으로 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기록된다. 글감 어플이 집요하게 ‘프롤로그’를 건네는 건 아마도 이 ‘첫 줄의 책임’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시작이 아름답진 않다. 어떤 도입은 아픔으로 가득하다. 병원 대기실에서 들은 차가운 통보가 그날의 첫 문장이 될 때도 있고, 한 통의 이별 메시지가 삶의 새로운 장을 강제로 열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불완전한 도입조차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다. 그것이 있기에 우리는 다음 문장을 이어갈 수 있다. 서두란 완결을 보장하는 약속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에 가깝다.

오늘의 글감을 고르는 일은 곧 나의 도입부를 정하는 일이다. 오늘 나는 어떤 시작을 선택할 것인가. 하늘빛일까, 커피 향일까, 아니면 그저 흘러간 한숨일까. 선택된 순간, 하루는 한 편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시작은 종종 우리를 속인다. 모든 것이 잘될 것처럼 속삭였다가, 곧장 불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속임수마저 의미 있다. 그 순간의 설렘은 가짜가 아니었으니까. 우리를 움직이게 한 떨림 자체가 기록될 가치가 있다.

오늘의 글감을 ‘첫머리’로 삼는다는 건 내 삶을 서사로 읽겠다는 선언이다. 아침마다 나는 묻는다. 오늘의 첫 장은 어떤 모습일까. 저녁이 오면 그 도입은 어떤 색으로 마무리될까. 답을 알 수는 없지만 중요한 건 멈추지 않고 이어가는 일이다. 글이 문장을 거듭해 나아가듯, 삶도 그렇게 문장을 이어간다.

서두는 늘 곁에 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시선조차 누군가의 도입이 될 수 있다. 한 문장이 또 다른 이의 기억에 남아 새로운 시작을 열어 준다면, 그것이 바로 글감으로서의 첫 장이 가진 힘일 것이다. 오늘의 글감은 개인의 기록을 넘어, 타인에게 건네는 신호로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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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게 묻습니다.
“오늘 당신의 첫 장은 어떤 문장으로 열렸나요? 아침에 떠오른 사소한 장면 하나가 있다면, 그것이 곧 오늘의 글감일지 모릅니다. 당신은 어떤 시작으로 오늘을 기록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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