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아서 더 오래 남는 것들
인생을 떠올릴 때 가장 선명하게 남는 건 길게 이어진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손가락 사이로 흘러가듯 스쳐간 찰나다. 스치는 눈빛, 한 줄기 바람, 오래 기억될 줄 몰랐던 작은 움직임. 그 순간들은 너무 짧아 손에 잡히지 않지만, 결국 우리를 만든 건 그런 파편들이다.
나는 종종 그 조각들을 불현듯 떠올린다. 첫사랑이 교실 창가에 앉아 있던 모습, 햇살이 머리칼에 닿아 반짝이던 빛, 아무 말 없이 웃던 표정. 그것은 고작 몇 초 남짓의 장면이었지만, 내 청춘 전체를 설명하는 하나의 문장처럼 남아 있다. 또 다른 기억은 병실의 공기 속에서 찾아온다. 할머니의 마지막 손길, 마른 손바닥에 얹힌 내 손가락의 온기. 말로 표현할 수 없던 정적, 그리고 그 뒤의 영원한 부재. 찰나는 늘 그렇게 다가온다. 미리 예고하지 않고, 사라진 뒤에야 더 뚜렷해지는 방식으로.
찰나는 카메라 렌즈에도 남는다. 셔터는 겨우 1/125초 남짓의 시간을 붙잡을 뿐인데, 그 안에는 웃음과 눈물, 혹은 시대의 공기까지 담겨 있다. 오래된 앨범을 펼치면, 한 장의 사진이 강렬하게 현재를 흔든다. 잊고 있던 목소리와 냄새, 공기의 결이 되살아난다. 시간은 돌아오지 않지만, 순간은 이렇게 다시 불린다. 사진은 어쩌면 삶을 붙잡으려는 가장 간절한 몸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순간이 기록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에 이미 지나가 버린다. 기록되지 않았음에도 분명 남아 있는 장면이 있다. 여름밤, 첫 빗방울이 이마를 스쳤을 때의 온기. 길모퉁이에서 스쳐간 낯선 이의 미소. 이유 없이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이 고였던 저녁. 흔적도 남지 않았지만, 몸과 마음은 그 순간을 기억한다. 찰나는 기록보다 더 깊은 층위에 각인된다.
순간은 또한 선택을 요구한다. 붙잡을 것인가, 놓아줄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 고백할 것인가. 단 몇 초의 망설임이 평생의 길을 갈라놓는다. 나는 여러 번 그 기로에 섰다. 어떤 날은 두려워 돌아섰고, 어떤 날은 무모하게 뛰어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깨달았다. 내 삶의 방향을 바꾼 것은 긴 계획이 아니라 찰나의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삶은 결국 짧은 순간의 누적에 불과하다.
짧다고 해서 가볍지 않다. 찰나 속에는 영원이 숨어 있다. 호수 위에 번진 석양의 빛, 아이가 첫 발을 내딛던 순간, 사랑하는 이의 눈에 담긴 따스함. 그 순간들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무한히 반복된다. 찰나가 영원으로 변하는 아이러니, 그것이 우리를 살게 한다.
나는 가끔 행복을 생각한다. 멀리 있는 목표를 이루는 날 찾아오는 거대한 감정이 아니라, 지금 이 짧은 순간 속에 이미 깃들어 있는 게 아닐까. 커피잔에서 피어오르는 향기, 골목길에서 만난 고양이의 느긋한 걸음, 예기치 못한 재회의 포옹. 그런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삶을 따뜻하게 만든다. 행복은 장대한 서사가 아니라 짧은 장면들의 연속이라는 사실.
죽음 또한 찰나와 닮아 있다. 수십 년 이어진 생은 결국 한순간의 숨 멎음으로 마무리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마지막 순간을 두려워하며 우리는 살아간다. 하지만 끝이 있기에 찰나는 더 빛난다. 흘러가기에 소중하고, 사라지기에 더욱 눈부시다.
찰나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러나 흘러갔다고 해서 헛된 것이 아니다. 그 순간을 알아차리고 마음에 담아두는 것, 그것이 우리가 시간을 살아내는 방식이다. 삶은 거대한 강처럼 흘러가지만, 강물 위를 반짝이게 하는 건 찰나마다 부서지는 햇살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펜 끝에 스미는 잉크, 창밖에서 흔들리는 나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눈길까지. 언젠가 희미해질지라도, 지금 이 찰나가 나를 살게 한다. 짧지만, 그래서 더 강렬하게. 순간은 늘 그렇게 우리 곁을 지나가며 영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