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듣지 않지만, 가장 솔직한 목소리
누구에게도 들려주지 못한 말이 있다.
나는 그걸 혼잣말로 흘려보낸다.
아무도 듣지 않는데, 오히려 그게 더 자유롭다.
가끔은 길을 걷다가, 버스 창가에 앉아 있다가, 불 꺼진 방 안에 웅크려 있다가도 말이 튀어나온다.
“왜 그랬을까.”
“이게 맞는 걸까.”
누구에게 묻는 게 아니라, 결국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그때마다 내 안에서 또 다른 내가 대답한다.
작은 무대 위에서 홀로 연기하는 배우처럼, 나는 나를 향해 고백한다.
그게 모놀로그다.
혼잣말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글로 쓰면 문법과 구조가 필요하지만, 말은 그냥 흘러나온다.
얽혀 있던 감정이 덩굴처럼 풀리고, 잡초 같은 불안이 줄줄 빠져나간다.
어쩌면 혼잣말은 마음의 배수구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말하고 나면 조금은 가벼워지고, 잠시지만 숨을 쉴 수 있다.
세상은 늘 소통을 말한다.
대화, 공감, 네트워킹.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자기 자신과의 대화 아닐까.
배우의 독백이 관객에게 가장 솔직한 고백이듯, 우리도 혼잣말을 통해 가장 진실한 마음을 마주한다.
나는 어릴 적, 혼잣말을 부끄러워했다.
혹시 누가 들을까 봐 입술만 달싹이며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알게 됐다.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말은, 남이 듣지 않는 말이라는 걸.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고른 문장은 절반쯤은 꾸며져 있다.
반대로 혼잣말은 숨김도, 장식도 필요 없다.
그래서 나는 내 독백 속에서 가장 솔직하다.
가끔은 내 안의 극장을 상상한다.
무대에 조명이 켜지고, 객석은 텅 비어 있다.
그곳에서 나는 주인공이 되어 말한다.
박수도, 야유도 없다.
오직 내 목소리만이 울리고, 다시 내 귀로 되돌아온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 나는 세상과 더 가까워진다.
내가 나를 속이지 않으니까, 세상도 잠시 정직해지는 것이다.
모놀로그는 고백이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나 혼자서 대답하는 고백.
때로는 너무 날카로워서 내 귀가 버거울 때도 있다.
“왜 상처 줬을까.”
“왜 놓쳤을까.”
그 질문들 앞에서 나는 더 이상 변명할 수 없다.
햄릿이 무대 위에서 “죽느냐 사느냐”를 묻듯, 나 역시 내 안에서 서성인다.
하지만 독백은 무의미하지 않다.
거친 돌멩이도 오래 굴리면 둥글어지듯, 처음엔 날카롭던 감정도 혼잣말 속에서 조금씩 모서리를 잃는다.
반복해서 흘려보내다 보면, 언젠가 부드럽게 가라앉는다.
그 과정이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나는 요즘 더 자주 모놀로그를 한다.
나이 탓인지, 아니면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서인지 모르겠다.
뉴스, 광고, 사람들의 말, 모두가 나를 설득하려 드는 세상에서, 나는 오히려 혼잣말을 택한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중얼거리는 그 순간, 오히려 숨통이 트인다.
모놀로그는 기록이다.
일기보다 솔직하고, 대화보다 깊다.
그리고 묘하게도, 혼잣말을 자꾸 하다 보면 언젠가 타인에게 할 말도 조금은 다듬어진다.
처음엔 날 것 같던 진심이, 흘러나오며 부드럽게 다듬어지는 것이다.
나는 그게 모놀로그의 힘이라고 믿는다.
사람들은 “혼잣말은 외로운 사람의 버릇”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거꾸로 생각한다.
혼잣말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야말로 더 고립된 건 아닐까.
나는 적어도 나 자신에게 말을 건다.
그게 나를 버티게 한다.
오늘도 나는 조용히 속삭인다.
“괜찮아, 너는 아직 살아 있잖아.”
누가 듣지 않아도 좋다.
오히려 아무도 듣지 않아서 더 솔직해진다.
내 목소리가 파도처럼 일렁이다가, 다시 돌아와 나를 위로한다.
그 반복 속에서 나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결국 이 글도 모놀로그다.
누군가 읽어줄지 모르지만, 그게 목적은 아니다.
나는 지금 나한테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을 훗날 다시 읽게 된다면, 또 다른 나와 마주할 것이다.
모놀로그는 그렇게 시간 속에서 살아남아, 나를 새롭게 만든다.
그러니 부끄러워하지 말자.
혼잣말은 작지 않다.
그건 내 안에서 가장 단단하게 울리는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