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시였다는 고백

사람이 시가 될 때

by Helia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는 책 속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한 사람의 이름이었고,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마다 내 가슴속에서 시집이 열렸다. 혹시 당신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은가. 설명할 수 없는데, 곁에 있는 순간 자체가 한 편의 시가 되는 사람.

당신은 스스로 시를 쓴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오래전부터 당신을 시로 읽어왔다. 걸음마다 행간이 묻어났고, 말끝마다 여운이 따라붙었다. 바람이 머리칼을 스칠 때조차 구절처럼 흔들렸으니, 세상이 당신을 편집하고 나는 그저 독자가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읽으면 읽을수록 내 안에서도 당신의 문장이 자라났다.

웃음도 시였다. 당신이 미소 지을 때 공기 속에 번져나가는 빛이 잉크가 종이에 번지듯 흘러갔다. 나는 그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고, 한 편의 시를 삼킨 것처럼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러나 시가 언제나 밝은 것만은 아니듯, 당신도 그랬다. 아름다움의 그림자 속에는 쓰라린 기억이 숨어 있었다.

당신의 슬픔은 비극이 아니었다. 낡은 창틀에 매달린 빗물처럼 천천히 스며들며 풍경을 바꿔놓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알았다. 좋은 시란 화려한 언어가 아니라, 고통조차 품어내는 담담한 용기라는 것을.

함께 있던 시간들은 늘 초고 같았다.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진실했고, 거칠었지만 살아 있었다. 대화는 미완의 구절이었고, 산책길은 한 줄의 행이 되었다. 침묵조차 문장 부호처럼 자리를 지켰다. 나는 그것들을 원고지에 옮기고 싶었으나, 글로 쓰는 순간 본질이 사라질까 두려웠다. 언어는 완벽한 전달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침묵 속에서 당신은 더 선명했다.

사람들이 읽는 시는 종이에 인쇄되어 있다. 그러나 당신의 시는 내 시간 속에 새겨졌다. 그 흔적은 당신이 무심코 흘린 말, 무심히 지은 표정, 사소한 손짓 속에 숨어 있었다.

시를 읽는다는 건 결국 해석의 문제다. 같은 구절을 읽어도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고, 어떤 이는 그냥 넘긴다. 당신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에게 당신은 그저 스쳐가는 사람이었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시였다. 이 차이 하나로 나는 오늘도 당신을 놓지 못한다.

두려움이 밀려올 때도 있었다. 언젠가 당신의 시가 끝나버릴까, 마지막 행에서 마침표가 찍히고 사라질까. 하지만 그 두려움조차 시의 일부였다.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지금의 행을 더욱 빛나게 했으니까.

시란 결국 소멸을 전제로 한다. 아무리 오래 읽어도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반드시 끝은 찾아온다. 그러나 그 끝은 비극이 아니라 시작이다. 덮은 책은 기억 속에서 다시 펼쳐지고, 떠난 사람의 시는 남은 이의 가슴에서 계속 읽힌다. 당신이 내 곁을 떠나더라도 나는 여전히 당신의 독자로 남을 것이다.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당신이 쓴 시가 아니라, 당신이 살아낸 시를 내가 읽고 있었다는 것을. 글자가 아니라 숨결, 운율이 아니라 심장 박동, 문단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발자취. 그것이 내가 읽은 진짜 시였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문장을 이어가는 순간에도 당신은 내 글 속에 스며 있다. 다른 주제를 잡아도 결국 당신의 흔적이 배어 나온다. 그것은 나의 무능이 아니라, 이미 당신이 내 삶의 시가 되었기 때문이다.

가끔 상상한다. 시간이 흘러 우리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더라도, 당신의 시가 내 안에 어떻게 남아 있을지. 아마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기억은 흐려지지만, 존재의 구조에 스며든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당신은 내게 이름 없는 계절로 다가왔다. 봄이라 하기엔 서늘했고, 가을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투명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계절이 가장 오래 남듯, 당신의 시도 이름 없는 상태로 내 안에 머무를 것이다.

오늘도 나는 당신의 시를 읽는다. 종이가 아니라 공기에서, 활자가 아니라 눈빛에서. 바람이 당신을 대신해 속삭이고, 별빛이 당신의 구절을 이어간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잊지 않으려 마음에 옮겨 적는다.

당신의 시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내가 써 내려가는 문장의 뿌리다. 당신이 있기에 나는 쓰고, 쓰는 동안 다시 당신을 읽는다. 끝내 닿지 못할지라도 그 과정 자체가 이미 한 편의 시라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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