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내밀어주길 바랐던 밤

잡히지 못한 손, 끝내 움켜쥔 나

by Helia

누군가 손만 내밀어주었다면, 나는 그토록 쉽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따뜻한 체온 한 줄기, 짧은 말 한마디면 충분했는데, 끝내 혼자 버텨야 했다. 외로움은 사람을 갉아먹는 게 아니라 얼려버린다. 차갑게 굳어져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나는 늘 괜찮은 척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웃으며 대화했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사람들 속을 걸었다. 하지만 속은 늘 흔들렸다. 작은 파문에도 바닥까지 흔들리는 호수처럼. 그럼에도 내 입은 습관처럼 “괜찮아”만 내뱉었다. 연약한 마음을 들키는 순간, 세상은 금세 그 틈을 파고들 것만 같았으니까. 그러나 강한 척으로는 메워지지 않는 공허가 있었다. 나는 여전히, 손길을 기다렸다.

어떤 날은 끝없는 계단 끝에 서 있는 듯했다. 발아래로는 까마득한 어둠, 뒤에서는 아무도 밀어주지도 잡아주지도 않았다. 오직 내가 발을 내디뎌야만 하는 낭떠러지. 그 순간에도 간절히 원했다. “누군가, 내 손을 잡아주기를.” 하지만 너는 멀찍이 서 있었고, 눈길조차 내게 닿지 않았다. 어쩌면 네 시선에는 내가 무너지지 않는 사람으로만 보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자전거를 배우지 못한 채 자랐다. 단 한 번, 옛 연인에게 배운 적이 있었다. 석 달 남짓 이어진 어정쩡한 관계 속에서, 그는 내게 균형 잡는 법을 알려주겠다며 페달을 밟으라 했다. 삐걱거리며 비틀거리던 나에게 그는 대수롭지 않게 던졌다. “넌 정말 돌대가리 같다.” 웃어넘길 수도 있었겠지만, 그 말은 내 마음을 날카롭게 베었다. 그 순간 정이 뚝 떨어졌다. 아마 그 뒤로는 스스로 차이려 온갖 생쇼를 다 했던 것 같다. 자전거는 그날로 접었고, 지금까지도 타지 못한다.

돌아보면 자전거보다 사람이 더 어려웠다. 잡아주길 바라면서도, 잡히는 게 두려웠다. 붙잡아주지 않는다고 원망하면서도, 막상 잡히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결국 혼자가 되었다. 내밀지 못한 손, 잡히지 못한 손, 공중에서 흔들리기만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결국 그 손길에 달려 있다. 말보다, 선물보다, 순간의 고비에서 내민 손이 관계를 지탱한다. 나는 네가 그런 사람이길 바랐다. 내 눈물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았다.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잡아주는 손 하나면 충분했다.

하지만 기대는 늘 실망을 낳았다. 나는 수없이 기다렸지만, 너의 손길은 끝내 오지 않았다. 너에겐 바쁘다는 이유가 있었고, 피곤하다는 핑계가 있었으며, 어쩌면 애초에 관심조차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든 결론은 같았다. 나는 홀로 버텨야 했다. 그렇게 고독은 서서히 내 안에 뿌리내렸다. 언젠가부터 부탁하는 법을 잊었다. “잡아줘” 대신 “혼자 할 수 있어”라는 말만 되뇌었다. 그 말속에서 더 깊이 고립되었다.

가끔은 꿈속에서만 그 손길을 만난다. 끝없이 흔들리는 계단을 내려가다, 갑자기 낯선 손이 나를 붙잡는다. 그 순간은 놀라울 만큼 생생하다. 체온, 땀의 습기, 떨어지지 않으려는 힘줄의 긴장감까지. 그러나 눈을 뜨면 방 안은 공허하다. 식어버린 공기, 텅 빈 손. 꿈이었다는 사실이 허무하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잠들고 싶어진다. 단 한 번이라도 더, 그 손길을 느끼고 싶어서.

사람들은 말한다. 기대하지 말라고. 강해져야 한다고. 맞는 말이지만, 인간은 철저히 관계적인 존재다. 서로에게 기대는 틈을 허락하지 않는 강함은 결국 고립을 부른다. 나는 누구보다 강한 척했지만, 실은 작은 바람에도 꺼질 촛불이었다. 잠시만 감싸주는 손바닥, 그 사소한 온기가 삶을 이어가게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네가 내 인생을 바꾸어주길 바라지 않았다. 다만 무너지는 순간 곁에 있어주기를 바랐다. 거창한 위로나 화려한 약속이 아니라, 단순한 동행. 그러나 그 단순한 바람조차 닿지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잘못 바란 걸까? 손을 내밀 수 없는 사람에게 기대한 게 내 실수였을까?” 어쩌면 그렇다. 사람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고, 다른 방식으로 도망친다. 그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생각한다. 그때 네가 손을 잡아주었다면 내 삶의 몇몇 장면들은 달라졌을까? 덜 울었을까, 더 웃었을까. 그러나 이미 지나간 가정법은 공허할 뿐이다. 남은 건 비어 있는 자리와, 여전히 본능처럼 손길을 찾는 나의 마음.

결국 깨달았다. 내가 원한 건 사실 너의 손이 아니라,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내민 손이었다. 결국 내 손을 잡아줄 사람은 나 자신 뿐이라는 것. 나는 오랫동안 그 사실을 외면했다. 다른 이의 손만 바라보다가 내 손을 놓쳤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다시 움켜쥔다. 흔들릴 때마다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괜찮아, 내가 잡고 있어.” 여전히 서툴지만, 그 손길로 나는 살아낸다.

그렇다고 해서 타인의 손길을 완전히 잊은 건 아니다. 인간은 혼자 살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끝내 타인의 체온을 그리워한다. 언젠가 진심으로 내 손을 잡아줄 사람이 올까. 아니면 끝내 홀로 달려야 할까. 답은 모른다. 다만 지금은 고백할 수 있다.

손을 내밀어주길 바랐던 그 밤, 나는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러나 이제는 네가 아닌, 내 손을 붙잡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이 고백은 미련이 아니라 기록이다. 나는 여전히 흔들리지만 쓰러지지 않는다. 언젠가 다가올 누군가의 손길은, 이제는 보너스일 뿐이다. 이미 나는 나를 잡아주고 있으니까.

혹시 당신도 그런 순간이 있었는가. 무너질 듯 흔들리면서도 끝내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았던 밤. 그때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난 네가 잡아주길 바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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