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다는 증거
나는 오늘도 구멍 난 양말을 신은 채 창가에 섰다. 발끝이 훤히 드러난 허술한 양말과, 그 앞에서 노란 얼굴을 환하게 내민 수선화가 마주한다. 낡아가는 것과 피어나는 것이 한 자리에 놓인 풍경은, 내 삶의 축소판 같았다.
햇살은 화분 위에 내려앉아 꽃잎을 부드럽게 감쌌다. 바람에 잔잔히 흔들리는 꽃은 생생한 생명을 드러냈다. 그 반짝임과 동시에 내 발끝의 구멍은 작은 초라함을 고백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두 풍경이 겹쳐질 때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 꽃의 빛깔이 양말의 구멍을 덜 초라하게 만들고, 구멍 난 양말은 꽃의 반짝임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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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 서랍에는 버리지 못한 양말이 몇 켤레나 숨어 있다. 세탁기를 돌릴 때면 종종 한 짝은 사라지고, 남은 양말은 어쩌다 ‘짝 잃은 동지’로 쌓인다. 발끝이 뚫린 양말은 버려야 마땅하지만, 어느새 그것도 쉽게 내치지 못하는 물건이 된다. 새 양말을 꺼내 신으면서도 나는 낡은 양말을 다시 쥐고 오래 들여다본다. 어쩐지 그 작은 구멍 속으로 지난날의 발자취가 스며 있는 것 같다.
언제부터 이렇게 해졌을까. 하루하루 걸어가며 쌓인 마찰이 고스란히 박힌 흔적일 것이다. 아스팔트 위를 종종걸음으로 달리던 날, 빗길에서 신발이 젖던 날, 먼 길을 홀로 걸어내던 순간들. 구멍은 그 모든 시간의 기록이었다. 낡음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살아왔다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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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수선화는 매년 봄마다 새 얼굴로 고개를 든다. 겨울의 냉기를 통과하고도 여전히 빛나는 노란 꽃잎. 그 끈질긴 주기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확신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양말은 한 번 구멍이 나면 되돌릴 수 없다. 기워도 자국은 남고, 결국 다시 해진다.
나는 이 차이 앞에서 오래 머문다. 끝없이 새로워지는 것과, 조금씩 낡아지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내 삶일까. 그러나 곧 깨닫는다. 사람은 모두 수선화와 양말을 동시에 품고 살아간다는 것을. 꽃처럼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 있고, 양말처럼 허물어지는 순간이 있다. 누구도 그 두 가지에서 벗어나 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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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내 안의 수선화가 있다. 새로운 글을 완성했을 때, 마음 깊은 곳의 감정을 꺼내 단어로 옮겼을 때, 혹은 오랜만에 마주한 이의 웃음을 보았을 때. 그때마다 나는 다시 피어난다. 그러나 동시에 내 안의 양말도 숨기지 못한다. 지워지지 않는 후회, 불쑥 떠오르는 상처, 아무리 지워내려 해도 남는 균열. 그것들은 발끝처럼 드러난다.
결국 사람은 반짝임과 구멍을 함께 지닌 채 걸어가는 존재다. 완전히 깨끗하거나 완전히 무너진 상태로는 살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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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양말을 기워 신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낡으면 버렸고, 버리면서도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인생의 구멍은 그렇게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마음에 난 틈, 관계 속의 균열, 오래 묵은 슬픔은 끝내 함께 살아야 한다. 오히려 그 구멍 덕분에 사람은 더 단단해진다. 바람이 스며드는 틈마다 추위를 견뎌냈고, 그 추위는 나를 더욱 단련시켰다. 양말은 해졌지만, 발은 멈추지 않고 길을 걸었다.
수선화는 내게 말한다. "너는 여전히 살아 있다."
구멍 난 양말은 속삭인다. "너는 많이 걸어왔다."
그 두 목소리가 겹쳐질 때, 나는 알게 된다. 살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충분한 증거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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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수선화는 다시 피어난다. 나는 여전히 낡은 양말을 서랍 속에 숨겨둔다. 그 차이는 내가 아직 배우지 못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꽃은 상처를 감추지 않고, 태연하게 제 얼굴을 내민다. 그러나 나는 작은 구멍에도 마음을 쓰고, 혹시 들킬까 봐 급히 새 양말을 꺼내 신는다.
언젠가 나는 구멍 난 양말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드러난 발끝마저 내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날이 온다면, 나는 수선화처럼 웃을 것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완전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아름답다고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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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수선화와 구멍 난 양말 사이에서 흔들린다. 빛과 어둠, 시작과 끝, 새로움과 낡음이 동시에 깃든 자리. 그래서 우리는 늘 같은 질문을 던진다. "나는 지금 어디쯤인가." 그러나 답은 단순하다. 우리는 여전히 걷고 있고, 여전히 피어나고 있다는 것.
양말의 구멍은 수선화의 빛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꽃의 환함은 양말의 상처를 덜 초라하게 만든다. 두 가지가 함께 있을 때, 삶은 온전하다.
나는 오늘도 발끝을 내려다본다. 구멍 난 양말 사이로 바람이 스며들고, 창가의 수선화는 흔들리며 웃는다. 그 순간, 나는 깨닫는다. 내 삶은 늘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자라왔다. 꽃처럼 피어나고, 양말처럼 닳아가며.
그리고 나는 다시 걸음을 뗀다. 구멍 난 양말을 신고, 수선화가 피어 있는 길 위를.
살아 있다는 증거를 발끝에 달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