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처럼 살고 싶었지만

결국 선택한 건 나답게 사는 길

by Helia

남들처럼 살고 싶었다. 번듯한 직장에 앉아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오고, 매달 정해진 날짜에 내 통장을 채워주는 숫자를 확인하며 안도하는 삶.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졸린 눈으로 흔들리며 출근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나도 같은 무리에 속해 있다는 안락함을 누리고 싶었다. 그들에게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크게 다르지 않은 규칙적인 안정감이 있었고, 퇴근 후 흘려보내는 피곤함조차도 당연한 일과의 일부처럼 보였다. 나는 가끔 상상했다. 회사 근처의 호프집에서 저녁 무렵 친구들과 모여 앉아 잔을 부딪히며 웃는 장면을. 그 자리에서 하루 동안 쌓아둔 상사 욕을 털어놓으며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하고 공감받는 순간을. 그렇게 서로의 지친 어깨를 부딪히며 술잔을 기울이는 풍경 속에서, 나도 어른답게 살아가고 있다는 착각을 잠시라도 누려보고 싶었다. 그리고 언젠가 “일 잘한다”는 말을 듣고 인정받는 기분, 그 작디작은 확신을 안고 돌아오는 길의 포만감이 내게는 가장 반짝이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곱씹을수록 그것은 내가 원하는 인생이 아니었다. 내가 흠모했던 것은 삶 자체가 아니라, 그저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착각이 주는 위로였다.

나도 한때는 남들처럼 직장을 다닌 적이 있다. 그러나 남들보다 손끝이 야무지지도 못했고, 머리 회전이 빠른 것도 아니었다. 업무를 익히는 속도는 늘 더뎠고, 체력은 언제나 나를 배신하곤 했다. 하루 종일 쏟아지는 일의 파도 앞에서 나는 금세 숨이 차올랐고,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해 자꾸만 주저앉고 싶어졌다. 남들에겐 당연한 하루가 내겐 끝없는 마라톤처럼 느껴졌다. 아침마다 다시 달려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지치게 했고, 그럴수록 나는 남들처럼 사는 일에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에 다가갔다.

‘남들처럼’이라는 말은 벽에 바르는 무늬 없는 벽지와 닮았다. 어디에 붙여놔도 튀지 않고, 시선을 빼앗지도 않는다. 그 속에 숨어 있으면 편안하지만, 내 흔적은 지워진다. 나의 이름과 얼굴은 희미해지고, 그저 하나의 무늬 없는 패턴으로만 남는다. 내가 꿈꾼 건 안정감이었지만, 그 안에서 사라져 버리는 나 자신은 상상하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남들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한 게 아니라, 그 무리에 끼어 “나도 여기 있다”는 소속감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같은 불평을 늘어놓고, 같은 시각에 퇴근하며, 같은 피곤을 안은 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홀로 뒤처지지 않았다는 안심을 얻고 싶었을 뿐이다.

내 앞가림이나 하며 사는 걸 감사히 여기자고, 마음을 다독이던 때도 있었다. “그 정도면 됐다”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욕심을 줄여 소박하게 사는 게 현명하다 여겼다.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타협이었다. 여전히 마음 한쪽에서는, 내가 더 나아갈 수 있는데도 주저앉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꿈틀거렸다. 나는 퇴근 후 술자리의 웃음소리와 술잔의 울림을 상상하면서도, 동시에 그 속에서 내 숨이 막힐 거라는 예감에 사로잡혔다. 정해진 자리에서 정해진 일만 하며 작은 성취에 만족하는 삶, 달콤한 안정은 내게는 결국 족쇄였다. 바람이 자유롭게 흘러야 바람일 수 있듯, 나는 나답게 살아야만 했다.

문제는 ‘나답게’가 도대체 무엇인지 모른다는 데 있었다. 남들처럼 사는 건 답안지가 있는 시험지였다. 회사에 들어가고, 월급을 받고, 휴가를 기다리며, 은퇴를 준비하는 루트. 정해진 빈칸을 채워 넣으면 누구나 합격점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나답게’라는 길은 답안지도, 나침반도, 이정표도 없었다. 발을 내딛는 순간마다 불안이 발목을 잡았다. 이 길이 잘못된 선택은 아닐까, 남들보다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수없이 되묻는 밤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다. 그 불안조차도 살아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내가 남의 답안지가 아닌, 내 손으로 길을 그려나가고 있다는 자각이 때로는 어떤 안정감보다 나를 버티게 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흔들릴 때도 많다. 승진 소식, 아이의 성장, 혹은 집을 장만했다는 자랑. 그들의 하루는 단단하고 성실하다. 나는 웃으며 축하를 건네지만, 돌아서면 공허한 기분이 남는다. 나도 저 길을 걸을 수 있었을까, 아니면 아예 선택하지 않은 것일까. 그러나 곧 내 안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말한다. “그건 네 삶이 아니잖아.” 나는 그 속삭임을 외면할 수 없다. 질투와 부러움은 잠깐 스치고 사라진다. 남들이 부러운 건 사실이지만, 그 길 위에서 나는 금세 나를 잃어버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은 단순하다. 나는 바쁘게 살아도 괜찮다. 그러나 그 바쁨이 남에게 맞추기 위한 허겁지겁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일로 채워진 바쁨이길 원한다. 나는 인정받고 싶다. 하지만 그 인정은 남들이 만들어놓은 기준에 억지로 내 몸을 맞춘 결과가 아니라, 내가 쓴 글 한 편, 내가 만든 작은 무언가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였을 때 건네받는 고요한 고백이기를 바란다. 퇴근 후 술자리 대신 나는 창가에 앉아 글을 쓰거나, 혼자 걷다 노을에 멈춰 서는 순간을 택한다. 누군가는 그걸 쓸쓸한 삶이라 말하겠지만, 내게는 그때가 가장 숨 쉬는 시간이다.

남들처럼 살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 되뇌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 세상은 늘 비교를 강요하고, 성공의 기준을 한 줄로 세워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흔들리는 나 자신 속에서도 하나의 확신을 발견한다. 나는 남들처럼 이 아니라, 나처럼 살고 싶다. 그 길이 외롭고 불안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사는 이유를 잃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남들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히 내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질투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소속감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내가 걸어온 길, 앞으로 걸어갈 길은 나답게 살아가는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나는 더 이상 무늬 없는 벽지처럼 흔적 없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조금 울퉁불퉁하고, 때로는 얼룩이 묻더라도, 내 색깔이 스민 벽 앞에 서고 싶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남들처럼 살고 싶었지만, 결국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 나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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