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아이

바람개비의 마음

by Helia

사람들은 가끔 나를 두고 “어른아이 같다”라고 말한다. 어른이라는 말과 아이라는 말이 나란히 붙으면 서로 상충하는 것 같지만, 막상 듣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위로가 된다. 그건 내가 다 닫히지 않은 창문처럼, 아직 바람과 빛을 맞이할 수 있다는 뜻일 테니까.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곧 무게를 짊어진다는 말이다. 책임, 체면, 계산 같은 것들이 어깨에 차곡차곡 얹히며 숨을 막아온다. 그러나 아이는 다르다. 아이는 늘 맨발로 걷는다. 흙의 차가움, 풀잎의 촉촉함, 돌멩이의 거친 감각까지 그대로 받아낸다. 아프면 울고, 다시 웃으며 달린다. 그 단순하고 투명한 반응이 어른의 눈에는 위험해 보일지 몰라도, 동시에 부러운 빛처럼 다가온다.

나는 여전히 아이 같은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 길가에 핀 작은 꽃을 보며 한참을 서 있거나, 비가 쏟아지는 날 괜히 우산을 접고 빗속에 서고 싶어진다. 달을 보면 속으로 소원을 빌고, 별빛에 괜히 울컥하기도 한다. 그런 순간들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래, 나는 어른아이.” 부끄럽지 않은 고백이다.

세상은 늘 철들라고 말하지만, 그 말에는 ‘부족하다’는 단정이 숨어 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어른아이로 살아간다는 건 결핍이 아니라 충만이라는 걸. 순수를 놓치지 않은 어른, 책임을 지면서도 맑음을 간직한 아이. 그것이 바로 나를 무너지지 않게 하는 힘이다.

거울 앞에 서면 얼굴은 분명 나이를 먹어가지만, 눈동자 속에는 여전히 어린 내가 숨어 있다. 그 눈은 지치고 무너지고 싶을 때마다 속삭인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목소리 덕분에 나는 끝내 다시 일어난다.

어른아이의 마음은 사소한 틈에서 드러난다. 작은 꽃 앞에서 웃고, 빗속에서 뛰고, 별빛을 바라보다 눈시울이 젖는 순간. 감추려 해도 스며 나오고, 숨기려 해도 드러난다. 그리고 나는 그 마음을 이제 더 이상 억누르지 않는다. 다정히 불러내어 말한다. “이게 바로 나야.”

강철 같은 어른스러움만으로는 세상을 버티기 어렵다. 강철은 단단하지만 차갑다. 반대로 유리 같은 아이의 마음은 쉽게 깨지지만, 그만큼 투명하다. 두 재질이 합쳐질 때 비로소 균형이 생긴다. 단단함과 투명함, 무게와 가벼움. 어른아이란 바로 그 균형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삶은 점점 더 무거워진다. 책임은 돌처럼 얹히고, 관계는 때로 쇠사슬이 된다. 그러나 내 안의 아이는 여전히 바람개비처럼 돌아가고 있다. 그 바람개비가 멈추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닐 것이다.

어른아이로 살아간다는 건 세상과 맞서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과 타협하면서도 나를 잃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아이의 시선으로 어른의 무게를 견디고, 어른의 책임으로 아이의 가벼움을 지켜내는 삶. 그것이 내가 택한 길이다.

그래서 나는 끝내 어른아이로 남으려 한다. 그것이 나를 지켜줄 마지막 순수이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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