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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가 셀리를 만났을 때

사랑과 우정, 연애와 관계의 경계에서

by Helia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영화 **〈해리가 셀리를 만났을 때〉**는 이 단순하지만 오래된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는 끝까지 그 질문을 붙잡고 흔들며, 결국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떤 관계 속에 있느냐고.

해리와 셀리의 첫 만남은 장거리 드라이브였다. 뉴욕으로 향하는 차 안, 둘은 끊임없이 말다툼을 이어갔다. 해리는 냉소적이고 직설적이었고, 셀리는 꼼꼼하고 완벽주의적이었다. 성격은 정반대였고, 대화는 늘 충돌했다. 그러나 바로 그 충돌이 두 사람을 서로의 기억 속에 오래 남게 했다. 사랑은 때로 이렇게 시작된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부딪히며 조금씩 상대를 알아가는 것.

영화가 던지는 핵심 질문은 명확하다.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있는가.” 해리는 단호히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성적 긴장감이 결국 우정을 파괴할 거라는 주장이다. 셀리는 반대로 가능하다고 믿는다. 두 사람은 오랜 세월 친구라는 이름으로 함께하지만, 결국 사랑에 빠진다. 영화는 말한다. 사랑은 결국 친구의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고.

나는 이 대목에서 깊이 공감했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특별한 감정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사랑의 기초는 우정에 있다. 함께 대화하고, 다투고, 화해하며, 반복된 일상 속에서 신뢰를 쌓는 것. 웃음과 눈물이 오가도 끝내 끊어지지 않는 관계. 그것이 곧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는 다이너에서 셀리가 오르가슴을 흉내 내는 장면이다. 옆 테이블의 여성이 “저 여자 먹은 걸로 주세요”라고 말하는 순간 관객은 웃지만, 동시에 남녀가 서로를 얼마나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지도 깨닫는다. 해리는 여자를 잘 안다고 자부했지만, 셀리의 대담한 퍼포먼스 앞에서 무너진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는 종종 상대를 안다고 단정하지만, 사실은 모른다. 진짜 친밀함은 모른다는 걸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영화 속 해리와 셀리는 각자 다른 연애를 하고, 실패하며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결국 서로의 곁에서 위로한다. 연애의 설렘과 이별의 씁쓸함을 모두 겪고 난 뒤에야, 진짜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과정을 ‘삶의 리허설’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실망하며, 결국 옆에 남아 있는 사람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곧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나는 이 장면을 내 일상과도 겹쳐 본다. 읽씹 당한 메시지를 몇 번이나 확인하는 순간. 데이트가 끝난 뒤 돌아오는 지하철 안의 공허함. 비 오는 날 함께 쓰던 우산 속에서 느껴지는 묘한 거리감. 이런 현실적인 경험들은 영화 속 장면과 겹쳐지며 내 마음을 찌른다. 결국 사랑은 이런 순간들 속에서 확인된다.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이 질문을 놓지 않는다.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관계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달라진다. 그러나 중요한 건 질문을 계속 품는 것이다. 관계가 흔들릴 때마다, 사랑이 불안할 때마다, 우리는 여전히 이 질문을 되뇐다.

결국 해리와 셀리는 오랜 시간을 돌아 사랑에 도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해리는 셀리에게 달려가 고백한다. “오늘 밤을 같이 보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 인생의 모든 밤을 같이 보내고 싶어서.” 이 대사는 지금도 수많은 로맨스 영화 대사 중 손꼽히는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사랑은 순간의 열정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인 우정과 신뢰 끝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를 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누구와 친구처럼 대화할 수 있을까. 누구와 함께 늙어갈 수 있을까.” 연애는 늘 어렵지만, 결국 사랑은 함께하는 일상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해리가 셀리를 만났을 때〉는 1989년 영화지만 지금도 낡지 않았다. 오히려 더 현실적이다. 왜냐하면 영화는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 반복된 일상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SNS로 시작된 대화가 언제 연애로 이어질지 모르는 지금, 영화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 답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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