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은 늘 찍기였다, 삶도 그렇다

찍기의 아이러니

by Helia

중간고사 시즌은 늘 기묘한 공기 속에서 찾아왔다. 교실 문을 열면 분필 냄새와 형광펜 냄새가 섞여 있었다. 창밖에서는 꽃잎이 흩날리는데, 교실 안은 이미 겨울처럼 살벌했다. 시험 전날, 아니 시험 당일 아침까지도 책상 위에는 어지럽게 쌓인 요약 노트와 커피 캔, 졸음에 찌든 눈이 있었다.

나는 벼락치기를 주로 했다. 계획적으로 한 달 전부터 꾸준히 공부하는 사람들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내겐 그런 꾸준함이 없었다. 늘 마지막 순간, 벼락이 치듯 쏟아붓는 공부법. 시험 범위를 펼쳐놓고 밤새 밑줄 긋고, 친구에게 필기 빌려 달라 애원하고, 카페인에 기대어 비틀거리던 시간. 그게 나의 전형적인 시험 준비였다.

아이러니한 건, 그렇게 공부를 했는데도 시험 결과는 늘 예측 불가였다는 사실이다. 정성껏 외운 부분은 기억나지 않았고, 오히려 대충 넘겼던 부분이 시험에 꼭 나왔다. 문제를 풀 때는 늘 직감에 기대야 했다. 마치 도박판에 앉아 주사위를 던지는 심정. 시험지는 내가 아는 걸 묻지 않았다. 시험지는 내가 모르는 걸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래서 결국 찍었다. 정답은 늘 나를 비웃듯 숨어 있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건, 아무렇게나 찍은 답이 의외로 맞을 확률이 높았다는 사실이다. 처음 예측한 번호가 정답일 때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늘 불안해서 지우고 바꾸었고, 그럴 때마다 정답은 사라졌다. ‘첫 감이 정답이다’라는 불문율은 나에게도 적용되었지만, 나는 그 불문율을 번번이 배신했다. 그리고 배신의 대가는 오답으로 돌아왔다.

이 경험은 내 인생의 아이러니와 닮아 있었다. 큰 결정을 내릴 때도, 나는 오래 고민했지만 결국 직감이 옳았다. 그 직감을 믿지 못해 돌아가거나 머뭇거릴 때, 늘 후회가 따라왔다. 시험장에서의 ‘지웠다가 틀린 답’처럼, 인생에서도 그렇게 정답을 놓친 순간들이 있었다.

벼락치기와 찍기는 나의 학생 시절을 상징하는 키워드였다. 밤새 교과서를 붙잡고 있다가 새벽에 허무하게 울컥했던 기억. 시험지를 받아 들고 첫 장부터 막혀버려 펜 끝에 땀이 맺히던 순간. 벼락치기 공부로는 결코 모든 걸 다 담을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허술함 속에서 배운 게 있었다. 완벽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 실패를 피할 수 없더라도 버틸 수 있다는 것.

시험이 끝난 날, 친구들과 떡볶이집에 앉아 서로의 ‘찍기 전설’을 자랑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나 3번만 찍었는데 다 맞았다!” 하면서 깔깔대던 웃음소리. 시험 성적은 별로였지만, 그 웃음만은 어떤 점수보다 값졌다. 그 순간만큼은 성적표보다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중간고사는 늘 괴롭고, 늘 두려웠지만, 동시에 늘 해방을 안겨주었다. 시험지를 제출하고 교문을 나서는 순간, 바람은 더 선선했고 하늘은 더 높았다. 억눌림이 사라진 자리에는 자유가 있었다. 그 자유가 나를 다시 버티게 했다.

돌아보면 중간고사는 단순한 평가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게 질문을 던지는 의식이었다. “너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니? 네가 쌓아온 시간은 무엇을 말해주니?” 시험지는 잔인했지만, 그 질문만은 정직했다.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늘 부족했고, 그 부족함을 인정하며 성장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교실에서 시험을 치르지 않는다. 하지만 삶은 여전히 시험지를 내민다. 원고를 마감할 때, 중요한 선택을 앞두었을 때, 새로운 길을 택할 때. 여전히 나는 벼락치기를 하고, 여전히 찍는다. 그러나 예전과 달라진 건 있다. 이제는 첫 감을 좀 더 믿게 되었다는 것.

시험은 늘 찍기였다. 삶도 그렇다. 직감으로 답을 고르고, 그 답이 정답이든 오답이든 책임을 지는 것. 때로는 웃고, 때로는 후회하고, 또다시 새로운 시험지를 마주하는 것. 그것이 나의 벼락치기 인생이 가르쳐준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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