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장|소녀의 세계

내 안에 아직도 반짝이는 작은 우주

by He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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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말러 – 교향곡 제5번 4악장 「아다지에토, 현과 하프를 위한 느리고 섬세한 사랑의 노래


소녀의 세계는 눈부신 햇살이 유리창을 통과하며 부서지는 순간처럼 반짝거린다. 그 빛은 곱게 쪼개져 무지개로 흩어지고, 작은 틈에도 스며들지만, 조금만 강한 손길이 닿아도 금세 금이 가버릴 만큼 연약하다. 사람들은 흔히 소녀를 가볍게 본다.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나이, 쉽게 웃고 쉽게 울며 공상에 젖는 나이.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누구도 짐작하지 못한 깊은 바다가 숨어 있다. 바람 한 줄기에도 흔들리는 얇은 꽃잎 같으면서도, 거센 파도에도 꺾이지 않는 강인한 뿌리를 지닌 존재. 소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우주다.

내가 소녀였던 시간은 늘 과장된 무대 같았다. 교실 창가로 기울던 햇빛조차 내게 말을 걸고, 종이비행기 한 장이 날아와 내 책상 위에 내려앉을 때면 그것이 온 우주의 메시지인 것처럼 해석하곤 했다. 사소한 눈빛에도 심장이 뛰었고,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 우연에 하루 종일 의미를 부여했다. 그런 나날은 투명한 거품 같았다. 금세 사라지지만 순간만큼은 눈부셨다. 그 거품이 터지는 소리, 그것조차 내겐 음악이었다.

소녀의 마음은 수수께끼와 같다. 단순한 “좋아한다”는 한마디를 꺼내지 못해 며칠 밤을 새운다. 누군가의 짧은 말속에서 세상 모든 진실을 읽어내려 하고, 작은 웃음 하나에 그날의 운명을 걸어버린다. 그토록 예민해서, 따뜻한 손길에는 오래 살아남지만, 차가운 말 한 줄에 산산조각 나기도 한다. 남들이 보기엔 하찮은 소동 같아도, 당사자에게는 심연을 뒤흔드는 격랑이다.

나는 종종, 그 시절의 내가 너무 순진해서 세상에 쉽게 다친 건 아닐까 생각한다. 누군가 던진 무심한 농담이 칼날이 되었고, 우연히 들은 노래 한 소절에 눈물이 터졌다. 그러나 그 상처들이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소녀의 세계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법을 배우는 시기였고, 나를 키워낸 거름이었다. 다치지 않고는 자랄 수 없었고, 아프지 않고는 빛을 알 수 없었다.

상상은 소녀의 숨이었다. 현실이 모자랄수록, 마음속 세계는 더욱 자유롭게 자라났다. 일기장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 살았고, 달빛에 비밀을 털어놓았다. 머릿속에서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활짝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 나는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현실은 늘 제한투성이었지만, 상상 속에서는 무한했다. 그 환상이야말로 소녀의 가장 강한 무기였다.

하지만 그림자도 늘 뒤따랐다. 질투, 열등감, 두려움이 마음 한편을 어둡게 물들였다. 친구의 웃음소리가 때로는 벼랑 끝으로 내모는 외침처럼 들렸고, 시험지 위 높은 점수는 날 향한 비난처럼 느껴졌다. 거울 앞에 서면 낯선 얼굴이 비쳤고, 나는 누구인지, 나는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끊임없이 묻곤 했다. 답을 찾지 못한 채, 질문만이 밤을 지배했다. 그러나 바로 그 끝없는 질문이 나를 성장시켰다. 확신 없는 발걸음 속에서도 길은 만들어졌다.

소녀였던 시절, 나는 무수한 ‘처음’을 겪었다. 첫사랑은 뜨겁고 서툴렀으며, 첫 거절은 가슴을 가르듯 아팠다. 친구와의 첫 다툼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첫 화해는 세상에 없는 감로수 같았다. 그 모든 순간은 어설펐고 지나치게 진지했지만, 바로 그 진지함이 삶을 지탱하는 뼈대가 되었다. 처음은 늘 서툴지만, 서툼이야말로 성장의 흔적이다.

이제는 어른이라 불리는 나조차, 그 시절의 나를 여전히 품고 있다. 갑자기 눈물이 차오를 때, 이유 없는 설렘이 심장을 두드릴 때, 그건 잊힌 줄 알았던 소녀가 내 안에서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 세계가 없다면, 나는 너무 메마른 어른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소녀는 나의 연약함이자 동시에 강함이다.

소녀의 세계를 이해한다는 건 과거의 추억을 꺼내는 일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소녀로 살아가고 있다. 교실 구석에서 일기를 쓰는 아이, 모두 앞에서 크게 웃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는 아이, 창문 너머 하늘을 보며 꿈꾸는 아이. 그들의 세계는 아직 꺼지지 않은 작은 등불이다. 우리는 한때 그 길을 걸었고, 그 빛을 여전히 가슴에 품고 있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소녀였던 나를 꼭 안아주고 싶다. 괜찮다고, 네가 잘하고 있다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그리고 네 세계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소녀의 세계는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시간의 강을 건너도 여전히 반짝이며, 때로는 나를 위로하고, 때로는 다시 설레게 한다.

결국 소녀의 세계란, 흔들리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비밀스러운 성이다. 겉은 깨질 듯하지만, 그 속은 누구보다 단단하다. 부서지는 듯 보이지만, 그 조각마다 빛을 머금고 있다. 소녀의 세계는 유리구슬 같으면서도, 별빛을 담은 바다 같다. 그 세계를 기억하고 품는 한, 우리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내 안의 소녀가 꺼지지 않는 한,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내 글을 읽으며 “나도 그랬어”라고 속삭여줄 때, 소녀의 세계는 또 다른 이의 가슴속에서 새로이 태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