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장|이십대로 돌아간다면?

나는 다시는 잘못된 인연에 발목 잡히지 않으리라.

by He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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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교향곡 제7번 A장조 작품 92, 제2악장 Allegretto


만약 이십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가장 먼저 원수 같은 그를 지워버릴 것이다. 한 사람의 잘못된 선택이 얼마나 긴 시간을 폐허로 만드는지, 이제야 뼈저리게 알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가끔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혼잣말한다. “혹시 다시 시작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절대 같은 길을 걷지 않으리라.”

그때의 나는 일기를 쓰지 않았다. 펜은 손에 있었지만, 매일의 마음을 기록할 용기가 없었다. 감정은 넘쳤으나 그것을 붙잡는 대신 흘려보냈다. 그러다 보니 기억은 구겨진 종이처럼 이리저리 흩어졌다. 이십대로 돌아간다면, 나는 반드시 매일의 흔적을 남길 것이다. 활자 속에 담긴 내 마음이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도록, 지금의 나에게 살아 있는 증거로 남기겠다. 혹시 당신도 그런 후회가 있지 않은가. 쓰고 싶었던 순간을 게을러서 놓친 일, 기록하지 못해 흐려진 추억 말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책장에 꽂힌 수많은 권들이 나를 기다렸지만, 나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넘어갔다. 반납 날짜에 쫓겨 마지막 장을 허겁지겁 넘긴 기억이 전부였다. 돌아간다면, 나는 단 한 권이라도 천천히 읽겠다. 그리고 반드시 기록하겠다. 줄거리보다 내 마음의 떨림을 적어두겠다. 그렇게 쌓인 문장들은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길러냈을 것이다. 책은 타인의 영혼을 빌려와 나를 키우는 거울이었는데, 그 사실을 알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문제였다. 불러주면 달려가고, 웃어주면 마음을 다 내어주던 시절. 하지만 그 우정들은 바람결에 날린 꽃씨 같았다. 화려하게 흩날렸으나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했다. 돌아간다면, 나는 그런 인연에 휘둘리지 않겠다. 싱거운 농담에 허비할 시간 대신, 나 혼자만의 사색을 택하겠다. 혹시 당신도 그런 경험 있지 않은가. 지워도 아깝지 않은 인간관계, 끝내 남은 건 공허뿐이었던 우정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람. 나는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다. 그는 처음엔 달콤한 향기처럼 다가왔지만, 곧 독이 되어 내 삶을 좀먹었다. 꽃길이라 속삭이던 그의 말은 결국 덫이었다. 사랑이라 믿었던 순간들이 사실은 감옥이었다. 이십대로 돌아간다면, 나는 단호하게 등을 돌릴 것이다. 혼자가 두렵다고 해서 잘못된 인연에 발목 잡히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 외로움은 일시적이지만, 잘못된 선택은 평생의 흉터가 되니까.

사람들은 젊음을 빛나는 시간이라 말한다. 하지만 내게 이십 대는 회색이었다. 탁한 안개가 짙게 내려앉은 들판 같았다. 길을 잃은 듯 헤매며, 무언가를 쥔 듯했으나 손 안엔 늘 공허만 남았다. 그러나 그 색을 다시 칠할 기회가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다른 색을 입히겠다. 파랑으로 차분함을, 초록으로 희망을, 붉은색으로는 용기를. 그랬다면 청춘은 한 폭의 그림처럼 눈부셨을 것이다.

돌아간다면, 나는 무엇보다 나 자신을 믿겠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작아지지 않고, 내 목소리를 잃지 않고, 스스로를 배신하지 않겠다. 그때는 늘 타인의 기준에 맞추며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결국 삶의 주인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조그만 방이라도 나만의 세계를 지키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나만의 시간을 키워가는 것이 가장 확실한 미래를 만드는 방법이었다는 것을.

혹시 당신도 상상해 본 적 있지 않은가.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러나 사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되돌릴 수 없다는 걸. 그렇다고 해서 후회만 남는 건 아니다. 상상은 때로 현재를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 나는 돌아갈 수 없기에, 지금에서야 비로소 다짐한다. 늦게 핀 꽃일지라도, 지금이라도 나의 계절을 시작하면 된다고.

이십 대는 갔다. 다시 오지 않을 계절이다. 하지만 그 시절의 후회는 현재를 비추는 등불이 된다. 돌아갈 수 있다면 다르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지금의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진다. 기록을 남기고, 책을 읽고, 불필요한 인연을 끊어내고, 나를 괴롭히던 그림자를 떨쳐내는 것. 그것이 곧 나의 두 번째 스무 살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 이렇게 쓴다. 이 글이 바로 내 일기의 첫 장이다. 언젠가 누군가가 다시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말할 것이다.

“이십대로 돌아간다면? 굳이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오늘부터 또 다른 스무 살을 살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