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 않게

나는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by Helia

괜찮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웃으며 넘겼지만 속에서는 눈물 한 방울이 자꾸만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럼에도 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나의 미소를 보고 안도했겠지. 하지만 나는, 그 미소를 지키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그 말은 언제나 가벼운 듯 들리지만 실제로는 무거운 돌멩이처럼 가슴에 내려앉는다. 작은 흠집 하나에도 금이 가는 유리잔 같은 마음을, “괜찮아”라는 한마디로 덮어버린다. 그 순간 나는 유리잔에 천 조각을 덧씌워 숨긴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금이 사라지는 건 아닌데도, 우리는 습관처럼 아무렇지 않다 말한다.

어릴 적, 친구에게 배신당한 날에도 그랬다. 함께 걷던 길 위에서 갑자기 혼자가 되었을 때, 나는 대수롭지 않은 듯 발걸음을 옮겼다. 교실 창가에 앉아 바깥의 나무만 멍하니 바라보며, 속으로는 “나 괜찮아, 나 아무렇지 않아”를 수십 번 되뇌었다. 하지만 손끝은 떨리고, 가슴은 바람에 흩날리는 종잇조각처럼 가벼워졌다.

사랑에도 그 말은 자주 쓰였다. 이별을 통보받은 날, 나는 목이 메어오면서도 “응, 알겠어. 아무렇지 않아”라고 대답했다. 돌아서던 그의 뒷모습이 희미해질 때까지, 나는 미소를 붙잡았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 창에 비친 내 얼굴은 잿빛이었다. 사람들 틈에 섞여 울지도 못한 채, 바람이 스치는 창가에 머리를 기대며 애써 눈을 감았다. 그날 밤, 베개가 젖도록 울면서도 결국 아침이 오면 또 아무렇지 않은 척 직장에 갔다.

살아가다 보면 사람들은 무심히 던진 말로 서로를 찌른다. “넌 왜 늘 그래?” “그 정도 가지고 힘들다고 해?”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수십 개의 대답을 떠올렸지만, 입 밖으로 내뱉은 건 단 하나였다. “괜찮아. 아무렇지 않아.” 그렇게 말하고 나면 정말로 괜찮아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사실은 더 깊은 구멍에 빠져들 뿐이었다.

아무렇지 않게라는 말은 살아남기 위한 기술이었다. 세상 앞에서 무너지지 않으려면, 무심한 척하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 웃음으로 가려진 얼굴은 방패가 되었고, 덤덤한 목소리는 갑옷이 되었다. 그 덕에 나는 크게 흔들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사람들은 내게 강하다 했지만, 사실은 부서질까 두려워 아무렇지 않은 가면을 쓰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진짜 아무렇지 않은 순간도 경험하게 됐다. 예전 같으면 크게 상처받았을 일도, 이제는 한 번 어깨만 으쓱하면 흘려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연인과의 이별도, 직장에서의 무례한 말도, “세상 다 그렇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어도 뿌리까지 뽑아내지 못하듯, 삶의 작은 파도에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는 날들이 생겨났다. 그럴 때면 내가 조금은 단단해진 것 같아 안도했다.

그럼에도 두려움은 남아 있다. 너무 오래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온 탓에, 어느 순간 진짜 감정조차 희미해져 버리는 건 아닐까. 누군가의 다정한 손길도, 마음을 다해 건네는 위로도, 나에게는 그저 스쳐가는 바람처럼 느껴질까 봐 겁이 난다. 아무렇지 않게라는 말은 나를 지켜주는 동시에, 내 감정을 무디게 만드는 독이 될 수도 있으니까. 웃음도 울음도, 기쁨도 슬픔도 점점 옅어져 결국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 건 아닐까.

나는 여전히 그 경계에서 서성인다. 누군가 물어온다. “힘들지 않아?” 나는 자동처럼 대답한다. “아니야, 괜찮아. 아무렇지 않아.” 그 말이 나를 살린 순간도 있었고, 나를 갉아먹은 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그 말을 꺼낸다.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는 건, 사실은 수많은 상처를 포개어 쌓아 두는 일일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흉터들이 겹겹이 쌓여도, 바람 앞에서는 여전히 미소 지어야 하는 것. 그러나 어쩌면 그게 어른이 된다는 증거 아닐까. 마음이 시리도록 아파도, 입술은 웃음을 기억하는 것.

나는 바란다. 언젠가 진짜 아무렇지 않은 날이 오기를. 억지로 감정을 감추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여전히 나는 스스로를 속이며 말하겠지. “난 괜찮아. 아무렇지 않아.”

그리고 그 말은 여전히 내 삶을 지탱하는 주문이 될 것이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날에도, 마음이 갈가리 찢겨 나가는 순간에도, 나는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살아낼 것이다. 그것이 내가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니까.

아무렇지 않게. 그 말은 내 안의 울음과 웃음을 동시에 감추고, 내일로 걸어가게 하는 가장 모순된 힘이다. 언젠가 그 힘이 더 이상 필요 없는 날이 오기를 꿈꾸며, 나는 오늘도 그 말을 되뇌며 살아간다. 아무렇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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