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어제와 아직 오지 않은 오늘
추천 클래식
막스 리히터 – 「On the Nature of Daylight (빛의 본질에 대하여)」
새벽 6:54.
눈을 뜨자마자 시계를 확인했을 때, 가장 먼저 다가오는 건 어딘지 모를 낯섦이다. 분침이 7시를 향해 달려가면서도 아직 닿지 못한 그 경계, 새벽이라 하기엔 늦었고 아침이라 하기엔 이른 순간. 그 모호한 틈이 내 마음을 오래 붙잡아두곤 한다.
누군가에게는 출근을 서두르는 초조한 시각일 테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밤을 지새운 피곤이 몸을 가라앉히는 시각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새벽 6:54는 하루와 하루 사이의 얇은 막, 마치 세상의 문턱 같은 시간이다. 아직 세상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는데, 공기는 이미 긴장으로 부풀어 있다. 그 초조와 설렘 사이에서 나는 늘 묘한 울림을 받는다.
나는 이 시간을 ‘겹침의 순간’이라 부른다.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와, 첫차를 타고 새로운 하루를 향해 나서는 이가 같은 플랫폼에 서 있는 순간. 서로 다른 방향이지만 같은 시각을 공유한다는 게 기묘하다. 끝과 시작, 마무리와 출발이 뒤엉켜 있는 장면. 그 한가운데 서 있으면 삶이란 늘 충돌과 겹침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어느 해 여름, 나는 6:54에 낯선 도시의 역 플랫폼에 서 있었다. 전날 밤 충동적으로 끊은 기차표, 한 장의 티켓이 내게 전혀 다른 풍경을 열어주었다. 가볍게 매단 가방 속에서 떨리듯 울리던 휴대전화, 화면엔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번호가 번쩍였다. "잘 지내고 있니?"라는 메시지가 짧게 도착했다. 읽자마자 심장이 요동쳤다. 나는 떠나온 것일까, 도망친 것일까. 그 답을 찾지 못한 채 기차에 몸을 싣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유리창 너머로 스며드는 햇살은 눈부셨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새벽이었다.
그때 알았다. 6:54는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내 삶의 전환점 같은 상징이라는 것을. 사랑과 이별, 떠남과 머묾, 모든 갈림길 앞에서 나는 늘 이 시간에 서 있었다. 어제의 내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오늘의 내가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시각. 불안정하지만 그렇기에 가장 솔직한 내 얼굴을 비춰주는 시각.
겨울의 6:54는 차갑다. 창문을 열면 아직 어둠이 미처 물러가지 못해 골목마다 서늘한 그림자가 걸려 있다. 하얀 입김이 허공에 맺혔다가 금세 흩어지고, 발끝은 얼음장처럼 굳는다. 그때의 나는 웅크린 채 버스를 기다리며 마음속 질문을 삼켰다. "오늘은 무사할까?" 하루를 버티기 벅찼던 시절, 나는 이 시각마다 도망치듯 살아 있었다.
반대로 여름의 6:54는 이미 눈부시다. 이른 햇살이 창문 틈새로 밀려 들어오고, 어제의 피곤을 지워내듯 방 안 가득 빛이 쏟아진다. 커피포트에서 물 끓는 소리가 작게 울리고, 흰 머그잔 위로 김이 피어오를 때, 나는 잠시 환상에 빠진다. 마치 세상 누구보다 먼저 하루를 움켜쥔 듯한 기분. 그러나 곧 깨닫는다. 세상은 이미 나보다 먼저 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내가 이 시간을 사랑하는 건, 그 모호함 때문이다. 어느 쪽으로 규정되지 않은 순간은 나를 자유롭게 한다. 아직 아무도 손대지 않은 오늘의 첫 장을 앞에 두고, 나는 어떤 글자를 적어 내려갈지 망설인다. 사랑일까, 체념일까, 희망일까. 그 망설임 속에서 나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 삶이란 결국 수많은 6:54의 연속 아닐까. 아직 닿지 않은 내일과, 이미 저문 어제를 동시에 품은 시간.
어느 날, 나는 6:54에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울먹이는 목소리, 가쁜 숨소리, 그리고 단 한마디. "나 이제 어떻게 해?" 순간, 모든 시계가 멈춘 듯했다. 그날의 6:54는 내 인생에서 가장 무겁게 기억되는 순간으로 남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다만 그 목소리를 들으며 함께 울었다. 삶이란 그런 것 같다. 어떤 시간은 스쳐 지나가고, 어떤 시간은 평생의 주름으로 남는다.
그 후로 나는 자주 시계를 확인한다. 6:54라는 숫자가 보이면 문득 발걸음을 멈춘다. 창밖을 보기도 하고, 내 마음의 결을 더듬기도 한다. "나는 지금 어디쯤 서 있는 걸까." "오늘의 나는 어제와 얼마나 다를까." 답을 내리지는 못하지만, 그 질문만으로도 나는 조금 더 나를 살아낸다.
6:54는 내게 매번 같은 질문을 던진다. "오늘은 어떻게 살래?" 나는 매번 대답을 미루면서도 그 질문 덕분에 하루를 다르게 바라본다. 어쩌면 삶의 본질은 대답보다 질문에 있는지도 모른다. 대답이 불완전하더라도, 질문이 나를 붙잡아 주기 때문에.
언젠가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한 적 있다. "내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은 다 6:54에 일어났다"라고. 농담처럼 던졌지만 사실이다. 떠나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다시 사랑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도. 그 모든 순간의 시곗바늘은 7시가 되기 직전, 6:54에 멈춰 있었다.
지금도 나는 종종 상상한다. 언젠가 내 마지막 날, 마지막 새벽에도 나는 6:54를 맞이할까. 여전히 모호한 빛 속에서, 아직 닿지 않은 오늘과 이미 저문 어제를 동시에 끌어안으며. 그 순간에도 나는 묻고 싶다. "오늘은 어떻게 살래?" 그 질문에 담담히 웃으며 대답할 수 있기를. "나는 오늘도 살아냈어."
새벽 6:54. 이 시간은 내게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모서리, 마음의 균열, 그리고 내가 끝내 놓치고 싶지 않은 유일한 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