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있다면 시작도 있다

끝은 종착지가 아니라, 다른 이름의 출발선

by Helia

끝이 있다고 해서 인생이 끝난 걸까? 실패한 걸까? 그렇지 않다. 그저 하나의 경주가 끝났을 뿐이다. 그리고 끝난 자리에는 언제나 또 다른 시작이 기다린다. 나는 이 문장을 수없이 되뇌며 살아왔다. 끝을 맞닥뜨릴 때마다 마음은 무너졌지만, 동시에 그 무너짐 속에서 기묘한 기운이 피어오르곤 했다.

우리는 대개 끝을 단절로 여긴다. 시험에 떨어졌을 때, 관계가 깨어졌을 때, 직장을 떠났을 때, 삶의 궤도가 완전히 끊어지는 듯한 절망이 몰려온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시간은 흐른다. 시계의 초침은 멈추지 않고, 해는 어김없이 뜬다. 자연은 끝을 인정하지 않는다. 계절은 반복되고, 바다는 밀려왔다 밀려나가며 다시 파도를 세운다. 끝과 시작은 서로 등을 맞대고, 쉼 없이 교차한다.

나는 봄꽃을 보며 그것을 배웠다. 만개한 벚꽃 아래 서 있으면 영원할 것만 같다. 그러나 꽃비가 내리는 순간 깨닫는다. 화려함은 잠시라는 것을. 하지만 그 자리에 푸른 잎이 돋아나며 새로운 여름이 시작된다. 꽃이 져야 열매가 맺히고, 열매가 떨어져야 다시 싹이 난다. 자연의 끝은 언제나 시작의 예고였다.

가을 길도 그렇다. 낙엽이 수북이 쌓이면 모든 게 죽어버린 듯 보인다. 그러나 그 낙엽은 흙으로 돌아가 새싹의 거름이 된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작을 돕는 준비일 뿐이다. 끝이란 늘 새로운 출발의 토양이었다.

밤하늘 별빛에서도 같은 진리를 본다. 우리가 바라보는 빛은 이미 오래전에 꺼져버린 별에서 출발한 것일지도 모른다. 끝난 빛이지만, 우리의 눈에 닿는 순간 새로운 시작이 된다. 별의 죽음은 빛의 끝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우리의 눈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끝이 곧 시작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나는 어린 시절, 왜 모든 게 사라져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여름방학은 왜 끝나야 하고, 좋아하던 프로그램은 왜 종영해야 하며, 축제의 불빛은 왜 꺼져야 하는지. 그 끝이 늘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알았다. 방학이 끝나야 새로운 학기가 열리고, 프로그램이 종영해야 다른 이야기가 찾아온다. 불빛이 꺼져야 비로소 별빛이 선명해진다. 끝은 아쉬움이면서 동시에 문을 여는 손잡이다.

도시의 풍경 속에서도 그 진리를 확인한다. 오래된 건물이 철거될 때, 세대의 기억이 허물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저린다. 그러나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또 다른 사람들이 웃고 울며 살아간다. 시장이 문을 닫으면 골목은 쓸쓸해지지만, 아침이 오면 다시 불이 켜지고 빵 냄새가 골목을 채운다. 끝과 시작은 늘 맞물려 하루를 만든다.

철학자들은 삶을 직선으로 보지 않고 원으로 본다. 직선 위의 끝은 단절이지만, 원 위의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이다. 태어남과 죽음도 원의 일부일지 모른다. 누군가의 끝은 또 다른 누군가의 시작이 된다. 죽음은 남겨진 이들에게 새로운 기억의 문을 열어주고, 이별은 다른 만남의 길을 터준다.

나는 끝을 두려워하지 않으려 애쓴다. 오히려 끝이 있음을 의식할 때 삶은 더 선명해진다. 꽃은 시들기에 더 아름답고, 해는 지기에 더 장엄하다. 유한하다는 사실이 순간을 붙잡게 만든다. 끝은 잔인하면서도 자비롭다. 끝을 통해 우리는 시작을 배운다. 떠남 속에서 만남을, 상실 속에서 소유를, 죽음 속에서 삶을 배운다.

삶의 마지막 날에도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끝이 있다고 해서 인생이 끝난 걸까? 실패한 걸까? 아니다. 그저 하나의 경주가 끝난 것뿐. 시작은 반드시 있다.” 끝은 종착지가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다른 이름의 출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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