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얼굴에는 어떤 이야기

표정이 들려주는 숨은 기록

by Helia

당신의 얼굴에는 당신조차 모르는 비밀이 숨어 있다. 거울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늘 낯선 감각을 느낀다. 그 얼굴이 분명 나 자신이라는 증거일지라도, 빛의 방향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표정 속에서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읽게 된다. 얼굴은 단순한 외형이 아니라, 살아온 세월과 감정, 관계와 기억을 고스란히 새겨 놓은 기록이다. 그래서 얼굴을 바라보는 일은 곧 삶을 읽는 일과 같다.

어린 시절 사진 속 내 얼굴은 늘 굳어 있었다. 카메라를 응시하면서도 웃음 대신 긴장된 표정이 남아 있었고, 눈동자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경계심이 스며 있었다. 어른들의 말에 맞춰 억지로 찍힌 사진 속 나는 어린아이 같지 않은 무표정으로 서 있었다. 웃음이 사라진 얼굴은 이미 그때부터 세상과의 거리를 보여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웃음이 없는 사진은 결핍이 아니라, 내 삶을 일찍부터 둘러싸고 있던 공기와 분위기를 정직하게 기록한 증거였다. 얼굴은 언제나 일기장처럼 진실을 기록한다.

나는 사람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타인의 표정에서 순간의 감정보다 더 깊은 무언가를 읽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만난 청년의 눈빛은 불안과 열망을 동시에 품고 있었고, 시장에서 마주친 할머니의 주름진 미소에는 오래된 체념과 다정함이 함께 깃들어 있었다. 아이를 품에 안은 젊은 어머니의 얼굴은 사랑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풍경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얼굴은 이미 충분히 말하고 있었다. 얼굴은 거짓말을 해도 진실을 배반하지 않는다.

얼굴에는 관계의 흔적이 새겨진다. 나는 내 표정 속에서 어머니의 그림자를 발견하곤 한다. 잠든 내 얼굴에서는 아버지의 고단한 생이 겹쳐진다. 화가 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깨무는 습관은 아마 어린 시절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당신의 얼굴도 마찬가지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이목구비뿐만 아니라, 사랑과 이별, 위로와 상처, 기대와 좌절—그 모든 관계의 파편들이 얼굴에 차곡차곡 남아 있다. 얼굴은 결국 우리가 만난 모든 사람들의 흔적이 겹쳐진 풍경이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얼굴을 나는 자주 떠올린다. 영정 사진 속 할머니의 눈가는 수많은 웃음과 눈물이 새겨져 있었다. 주름마다 계절의 바람이 깃들어 있었고, 입술 끝에는 여전히 다정한 인사가 머물러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보며 주름이 나이의 낙인이 아니라 삶의 훈장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얼굴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가는 것이다.

시간은 얼굴 위에 가장 집요한 작가다. 젊음의 탄력을 거두어 가는 대신, 세월은 그 자리에 주름과 굴곡을 남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쇠락이 아니다. 웃을 때마다 깊어지는 눈가의 주름은 기쁨이 많았음을 증명하고, 이마의 세로 주름은 수없이 고민하고 싸워온 흔적을 보여준다. 턱 끝의 긴장은 아직 풀리지 않은 불안을 말하고, 입술 끝의 떨림은 말하지 못한 고백을 드러낸다. 얼굴은 시간이 새긴 필체로 이루어진 서사이며, 그 문장은 어떤 문학보다 진실하다.

검색창에 “표정 심리학”을 치면 수많은 글이 나온다. 그러나 책 보다 더 정직한 교과서는 바로 거울 속 얼굴이다. 피곤이 겹겹이 쌓인 직장인의 얼굴,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학생의 얼굴, 오랜 기다림 끝에 반가운 이를 만난 사람의 환한 미소. 우리는 모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얼굴 속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가 숨어 있다. 얼굴은 언어 이전의 언어이며, 시간 이전의 기록이다.

나는 거울 속에서 오늘의 나를 읽는다. 화장으로 가려지지 않는 피로, 어제의 기억에서 남은 불안, 그러나 여전히 무언가를 기대하는 희미한 눈빛이 함께 있다. 나는 그 얼굴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얼굴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소설의 한 페이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거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거울은 결점을 찾는 도구가 아니라, 내가 써 내려가고 있는 서사의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주름이 늘고 표정이 굳어갈수록 오히려 얼굴은 더 많은 이야기를 품는다. 젊음의 사진이 화려한 한 장의 시라면, 나이 든 얼굴은 두꺼운 장편소설이다. 단순한 한 순간이 아니라 수많은 계절이 겹쳐져 남긴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이 든 얼굴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 얼굴은 거짓된 화장보다도 더 강렬한 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제 묻고 싶다. 당신은 오늘 자신의 얼굴을 얼마나 읽어냈는가. 우리는 타인의 얼굴에서 이야기를 읽는 데는 능숙하지만, 정작 자기 얼굴에 담긴 서사를 읽어내는 일에는 서툴다. 결점을 고치려 애쓰는 대신, 그 얼굴 속에 새겨진 시간과 감정을 읽어보라. 당신의 얼굴은 지금까지 살아온 역사와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동시에 품고 있다.

얼굴은 거울이자 창이다. 거울로는 당신 자신을 비추고, 창으로는 세상이 당신을 바라본다. 당신의 얼굴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주름마다, 웃음마다, 눈빛마다 살아온 날들의 증거가 새겨져 있다. 그러니 얼굴을 숨기지 말고, 그 자체로 살아 있는 기록으로 받아들이자.

당신의 얼굴에는 어떤 이야기가 새겨져 있을까. 오늘 거울 앞에 서서, 당신만의 서사를 한번 읽어보시길 바란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사랑해 주길. 결국 당신의 얼굴은 오직 당신만이 써 내려갈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작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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