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글자를 줄였지만, 마음까지 줄일 순 없다
세상은 이제 단어마저도 다이어트 중이다. 별다줄, 별 걸 다 줄여버린다. 긴 문장은 뼈대만 남기고 잘려나가고, 풍성한 말들은 숨 고르기도 전에 축약된다. 글자가 군살처럼 깎여 나가면서 우리는 어쩐지 마음의 살점까지 덩달아 잃어버리는 기분에 휩싸인다.
처음 “별다줄”이란 표현을 들었을 때, 나는 웃었다. 하지만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이어 떠오른 건 묘한 씁쓸함이었다. 세종대왕이 지금 시대에 내려오신다면, 휴대폰 속 줄임말들을 보며 무슨 말씀을 하실까. “내가 만든 글자가 이렇게 쓰이려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거늘.” 그렇게 한숨을 내쉬실지도 모른다. 백성 누구나 쉽게 읽고 쓰도록 세심하게 다듬어 놓은 문자가, 이제는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잘려나가는 현실. 그 광경 앞에서 어찌 마음이 무겁지 않으랴.
나는 언젠가 친구에게서 ‘JMT’라는 답장을 받은 적이 있다. 한참을 들여다보다 결국 검색창을 열었다. ‘존맛탱.’ 그 뜻을 알자마자 허무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맛있다는 한마디를 이렇게까지 줄여야 했을까? 그 짧은 세 글자 속에 과연 음식의 향기와 기분의 설렘이 온전히 담길 수 있을까? 문득, 단어의 살을 베어내면서 우리가 깎아낸 건 사실 표현의 깊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임말은 때로 암호 같다. 아는 사람끼리만 통하는 신호, 낯선 사람에겐 이해할 수 없는 암호문. 그래서 어떤 세대에게는 소속감이고, 또 다른 세대에게는 장벽이 된다. 나보다 한참 어린 조카가 “알잘딱깔센”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웃지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설명을 듣고 나서야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이미 순간의 즐거움은 지나가 버렸다. 언어가 다리를 놓기보다 오히려 벽이 되어버린 셈이다.
물론 줄임말에는 나름의 매력이 있다. 긴 문장을 짧게 압축하면서 생기는 간결함, 아는 사람끼리만 웃을 수 있는 암호 같은 즐거움. 그러나 그 간편함 뒤에 숨어 있는 공허함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단어가 짧아질수록 마음도 짧아지고, 문장이 축소될수록 대화의 결도 얇아진다. 누군가의 울음을 ‘ㅜㅜ’ 두 글자로만 대신할 때, 그 눈물의 온도는 어디까지 전해질까. 누군가의 웃음을 ‘ㅋㅋㅋ’로만 표현할 때, 그 떨림이 과연 끝까지 닿을까.
나는 자주 후회한다. 무심코 ‘ㅇㅋ’라고 보낸 메시지, ‘ㄱㅊ’라는 두 글자로 던진 위로. 그 순간 나는 시간을 아꼈지만, 동시에 마음의 길이를 잘라냈다. “응, 알았어”라고 다 적어 보냈다면 전해졌을 따뜻함이, 단축된 글자에 갇혀 식어버린다. 속도는 얻었지만 온기는 잃었다.
세상은 우리를 끊임없이 재촉한다. 빨리 읽고, 빨리 쓰고, 빨리 이해하라고. 그러나 언어마저 속도에 매몰되면 남는 건 무엇일까. 삐뚤빼뚤한 손글씨, 길게 이어지는 편지, 서툴지만 정성스러운 문장. 그런 것들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대신 줄임말이 장악한 풍경이 펼쳐진다. 편리함은 늘 달콤하지만, 그 대가로 사라진 것들을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아버지께서 내 메시지를 보시더니 고개를 갸웃하셨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냐?” 내가 보낸 건 단 세 글자, ‘별다줄.’ 설명을 듣고 나신 아버지는 한참을 웃으셨다. “세종대왕이 보시면 기가 막히겠다.” 그 웃음 속엔 서운함이 숨어 있었다. 언어가 세대 사이의 다리가 아니라 벽이 되어버린 현실. 그때 나는 절감했다. 줄임말은 편리할지 몰라도, 결국 누군가를 대화의 바깥으로 밀어내기도 한다는 걸.
나는 가끔 상상한다. 세종대왕이 스마트폰을 들고 메시지를 주고받는 모습을. 줄임말이 가득한 채팅방을 보시며 탄식하시다가도, 곧 미소를 짓지 않을까. 언어란 결국 시대의 거울이니, 변화는 막을 수 없다는 걸 아시리라. 다만 한마디는 남기실 것이다. “내가 만든 글자는 이렇게 쓰이려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 줄여도 좋으나 마음까지 줄이지는 말거라.”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세상은 줄여도, 나는 가끔 끝까지 다 쓰겠다고. “고마워”를 ‘ㄱㅁ’으로 줄이지 않고, “괜찮아”를 ‘ㄱㅊ’으로 대체하지 않고, “사랑해”를 ‘사’로 축약하지 않고. 글자가 길어질수록 마음의 길이도 늘어난다고 믿으면서.
별다줄, 네 글자 속에서 나는 오히려 ‘다 채우고 싶은’ 마음을 읽는다. 언어가 다이어트에만 몰두한다면, 결국 영양실조에 걸리는 건 우리의 대화일 것이다. 세종대왕이 남긴 한글은 줄이라는 명령이 아니라, 다 쓰고 다 담으라는 선물이었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글자를 다 적는다. 길다고 주저하지 않고, 느리다고 멈추지 않는다. 줄이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고, 다 적어야만 비로소 온전히 전해지는 말들이 있으니까.
세상은 여전히 줄여 갈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끔, 세종대왕께서 서운해하지 않으시도록 끝까지 다 적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언어를 사랑하는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방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