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마음, 쉽게 털어놓지 마

가장 아픈 건 가까운 사람이다

by Helia

사람은 누구나 깊은 바다 같은 마음을 품고 산다. 겉으로는 잔잔해 보이지만, 그 안쪽에는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해류가 흐른다. 그래서 나는 내게 늘 말한다. 속마음, 쉽게 털어놓지 말라고. 그건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상처를 줄이기 위한 생존의 지혜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속 시원하게 다 털어놔. 그러면 좀 나아질 거야.” 하지만 진짜 그럴까. 속마음을 내보이는 순간, 상대가 나를 이해해 줄 수도 있지만, 아무렇지 않게 흘려버릴 수도 있다. 무심한 고개 끄덕임 하나, 건성으로 내뱉은 대답한 줄이 마음을 산산이 조각내기도 한다. 결국 고백은 내가 원했던 위로가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흉터를 남길 때가 많다.

한 번은 믿었던 친구에게 내 고민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가족 이야기를 조심스레 내놓았다. 그날 밤만 해도 어깨가 가벼워진 듯했는데, 며칠 뒤 내 이야기가 다른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순간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속마음은 원래 보듬어져야 하는데, 세상은 그것을 구경거리로 바꿔놓을 때가 많다. 그때 나는 알았다. 진심은 빗물 같다. 한 방울은 시원하지만, 모아지면 제 발밑을 적셔 차갑게 만든다.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말라는 건 단순한 방어가 아니다. 그것은 존엄을 지키는 최소한의 방법이다. 내 안의 가장 깊은 이야기를 아무에게나 털어놓는 건, 낯선 이에게 집 주소를 알려주고 열쇠까지 맡기는 것과 같다. 좋은 사람이라 믿었지만, 그가 언제든 문을 열고 들어와 내 공간을 헤집는다면 나는 어디서 안심할 수 있을까.

물론 모든 진심을 가둬도라는 뜻은 아니다. 인간은 결국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내 마음을 열어야 할 순간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건 아무나의 자격이 아니다. 오랜 시간 쌓인 신뢰, 묵묵히 보여준 배려, 말하지 않아도 알아채는 눈빛. 이런 조건이 하나씩 갖춰져야 비로소 문은 열리는 법이다. 그 조건이 없다면, 차라리 침묵이 낫다.

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어떤 말은 칼이 되어 상처를 내고, 어떤 말은 물이 되어 상처를 씻는다. 문제는, 내가 내어준 속마음이 칼로 쓰일지 물로 쓰일지 결정하는 건 내가 아니라 상대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섣부른 고백은 때로 자기 상처를 자초한다.

나는 차츰 말을 아끼는 법을 배웠다. 침묵은 속마음을 지켜주는 단단한 벽이 된다. 차라리 글로 풀어내는 편이 낫다. 종이 위의 문장은 흘러가지 않는다. 글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나는 활자 속에서 내 마음을 정리하고, 그것이 비밀로 남아도 괜찮다. 글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니까.

하지만 솔직히 말해, 나도 누군가 내 속마음을 들어주길 바란다.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한 고백을 이해해 줄 단 한 사람을 기다린다. 결국 인간은 혼자 살 수 없으니까. 그래서 속마음을 쉽게 털어놓지 말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진짜 털어놓을 대상을 찾으라는 뜻이기도 하다. 모든 이에게 주지 말고, 단 몇 사람에게만 내어주라는 의미다. 그 몇 사람은 평생을 걸쳐서야 겨우 찾아질지도 모른다.

속마음을 너무 자주 내놓다 보면, 내 감정이 소모품이 된다. 진심은 흔해지고, 결국 누구도 그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반대로, 오랫동안 감추었다가 마침내 꺼냈을 때, 그 무게는 더 깊게 울린다. 속마음은 값싼 동전이 아니라, 오래 묻어둔 보석이다. 누구에게나 흩뿌릴 수 없는 보물이다.

나는 몇 번의 상처를 통해 배웠다. 쉽게 털어놓은 마음은 쉽게 가벼워진다는 것을. 그러나 오래 지켜온 마음은 단 한 번의 고백으로도 상대를 흔들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말한다. 속마음, 쉽게 털어놓지 마. 함부로 내어줄수록 내 가치는 줄어든다.

그러나 전혀 내어놓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꼭 필요한 순간이 올 것이다. 그 순간을 위해 마음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내 진심을 건넬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속마음을 지킨다는 건 곧 나 자신을 지킨다는 뜻이다. 세상은 가끔 잔인하고, 사람은 종종 실망스럽다. 그러나 그 모든 한가운데서 내가 반드시 붙잡아야 하는 건 내 내밀한 마음이다. 그것이 부서지지 않도록, 나는 오늘도 속으로 중얼거린다.

속마음, 쉽게 털어놓지 마. 그것은 값싼 동전이 아니라, 오래 묻어둘수록 빛나는 보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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