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몰래

남몰래 피어난 설렘

by Helia

남몰래 좋아한 적, 누구나 있지 않을까. 나도 그랬다. 그것도 하필이면 친구의 오빠였다. 이름이 승현이었던가, 승준이었던가. 이제는 기억 저편에서 지워져 버린 이름이지만, 농구하던 그의 모습만은 선명히 남아 있다. 땀이 흐르는데도 환하게 웃던 얼굴, 농구공을 가볍게 다루던 손, 그 순간만큼은 운동장 위의 주인공 같았다. 외모가 워낙 출중해선지, 일반인으로 살기에는 아까운 얼굴이었다. 내 삶을 통틀어 지금껏 그만큼 잘생긴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마 그 기억이 오래도록 남아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마다 내 마음은 괜히 분주했다. 현관에 놓인 그의 운동화를 확인하는 게 첫 번째 일이었다. 하얀 운동화 끈이 느슨하게 풀려 있으면, 아, 오늘은 집에 있구나.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듯 뛰었다. 방문 틈 사이로 흘러나오던 음악, 혹은 농구 연습을 마치고 돌아와 물 한 컵을 들이켜는 그의 무심한 모습조차 내겐 설레는 장면이었다. 그 순간의 나는 혼자만의 영화 속에 살았다.

그러나 그 마음은 어디까지나 ‘남몰래’여야 했다. 친구가 눈치라도 챌까 두려워, 괜히 목소리를 낮추고 웃음을 삼키곤 했다. 친구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척했지만, 내 시선은 늘 그 집 거실과 그의 방 사이를 떠돌았다. 들키면 모든 게 무너질 것만 같아 더더욱 조심스러웠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이렇게 스스로 마음을 단속하며 살아야 하는 일이었나 싶었다.

그렇다고 그가 내게 특별한 반응을 보인 것도 아니었다. 나를 향한 눈길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어린 마음에,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듯한 그의 기운이 내 일상을 흔들어놓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 짧은 흔들림만으로도 내 하루는 달라졌다. 혼자만의 비밀이 있다는 건 때로는 세상을 더 반짝이게 했다.

결국 그 감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웃음보다 친구와의 대화가 더 재미있어졌고, 그의 목소리보다 나를 부르는 다른 이름들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불씨처럼 타올랐던 감정은 바람에 꺼지듯 사라졌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마음은 사라진 뒤에도 나를 오래도록 따뜻하게 했다. 짝사랑이 꼭 오래가야만 가치 있는 건 아니었다. 짧았어도 진심이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순수했다. 남몰래 시작된 마음은 남몰래 끝났지만, 그 순간의 설렘은 여전히 내 청춘의 가장 투명한 색깔로 남아 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그 비밀은 이제 글 속에서만 다시 살아나, 이렇게 또 한 번 나를 웃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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