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기다림 사이, 스쳐가는 빛
혹시 겨울밤 하늘에서 꼬리별을 본 적이 있나요?
숨이 하얗게 흩어지고, 세상은 고요히 얼어붙어 있는데, 그 적막을 가르며 한 줄기 빛이 스쳐가는 순간 말이에요. 너무도 짧아 손에 잡히지 않고, 이름을 다 부르기도 전에 사라지지만, 마음속에는 오래도록 흔적을 남기는 것. 나는 그것을 ‘겨울, 꼬리별’이라 부른다. 기다림의 계절과 찰나의 빛이 만나는 자리.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면, 언제나 겨울밤 하늘이 따라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장소는 희미하다. 내가 살던 집에 마당이 있었던가? 작은 흙바닥이 있었던 것도 같고, 없었던 것도 같다. 기억은 뿌옇게 흩어져 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하늘은 너무 넓었고, 별빛은 손에 닿을 듯 가까웠다는 것. 친구들과 함께 뛰놀다 별이 흘러내리는 걸 보면, 우리는 하나같이 소리쳤다. “소원 빌어!” 그 별이 유성이었는지, 진짜 꼬리별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그 순간만은 우리가 우주의 비밀을 함께 본 것만 같았으니까.
겨울은 본래 기다림의 계절이다. 나무들은 잎을 모두 떨구고, 땅속 깊은 곳에서 봄을 준비한다.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며 따뜻한 날을 상상한다. 하지만 그 기다림 속에서 불현듯 나타나는 꼬리별은 단순한 별이 아니다. 오늘의 나와 어제의 나, 그리고 내일의 나를 이어주는 다리처럼 느껴진다. 나는 꼬리별을 볼 때마다 삶이 잠시 가벼워지는 경험을 한다. 쌓여 있던 근심이 빛줄기를 따라 흘러가 버리는 것처럼.
기억 속 또 다른 겨울밤. 이유 모를 눈물이 멈추지 않던 날이 있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방 안에 웅크려 있던 내게, 문득 창밖에서 꼬리별이 스쳐갔다. 그때 알았다. 하늘은 말없이 대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너는 혼자가 아니다.” 그건 언어보다 깊은 울림이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나는 꼬리별을 단순한 천문 현상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것은 삶이 건네는 신호, 잊지 말라는 다짐, 그리고 오래전부터 준비된 위로였다.
꼬리별은 멀리서 온다. 태양계 가장 먼 끝, 얼음과 먼지가 뒤섞인 곳에서 시작해 오랜 세월을 달려온다.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을 돌아 지구 앞을 스쳐간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내가 본 한 줄기 빛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깨닫게 된다. 내 삶은 짧고 덧없지만, 그 짧은 시간 속에서 우주의 수만 년과 교차한다는 것. 그것은 작은 인간의 생에도 기적 같은 순간이 있음을 보여준다.
겨울의 차가움은 우리의 감정을 더 깊게 만든다. 눈 위의 발자국이 선명하듯, 마음속 상처도 뚜렷해진다. 그 위에 꼬리별이 지나가면 새로운 의미가 생긴다. 누군가는 그 순간 사랑을 고백하고, 누군가는 떠난 이를 그리워하며 눈물 흘리고, 또 다른 이는 미래를 꿈꾸며 소원을 빈다. 겨울밤의 꼬리별은 그렇게 사람마다 다른 이야기로 번져 나간다.
나 역시 이제는 소원을 빌기보다, 그 순간을 오래 기억하려 한다. 꼬리별이 스쳐가면 내 안의 희미한 기억들이 선명해진다. 어떤 건 따뜻했고, 어떤 건 아팠다. 그러나 모두 나를 이루는 별자리였다. 추억은 겨울 서리꽃 같아서 손에 쥐려 하면 녹아버리지만, 멀리서 바라볼 때는 더 아름답다. 그리고 그 추억을 이어주는 매듭이 꼬리별이다.
겨울과 꼬리별, 이 둘은 닮았다. 겨울은 영원히 이어질 것처럼 길지만 반드시 끝나고, 꼬리별은 순간적이지만 그 뿌리는 우주의 오랜 시간 속에 있다. 겨울은 인내를 가르치고, 꼬리별은 찰나의 아름다움을 알려준다. 결국 삶은 기다림과 순간의 교차 위에 놓여 있음을 일깨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겨울을 살아가며, 언젠가 나타날 꼬리별을 기다리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고독이 길어질수록 그 한 줄기 빛은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꼬리별이 스쳐간 하늘은 잠시나마 빛으로 가득 차고, 그 빛은 우리의 마음에도 불씨로 남는다. 그 불씨는 다시 봄을 기다릴 힘이 되어준다.
나는 여전히 겨울밤이면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꼬리별이 있든 없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어딘가에서 아주 먼 길을 돌아 언젠가 내게로 올 빛줄기가 있다는 믿음이다. 그 믿음 하나만으로도 긴 겨울은 견딜 만하다.
꼬리별은 스쳐가지만, 그 기억은 남는다. 겨울은 차갑지만, 그 차가움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위로가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다린다. 나의 겨울을 가로질러올 또 다른 꼬리별을. 언젠가 누군가에게 나도 꼬리별 같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여러분은 언제 마지막으로 꼬리별을 보셨나요? 그 순간 어떤 소원을 빌었나요? 혹은 어떤 기억을 떠올렸나요? 오늘 밤,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세요. 겨울은 차갑지만, 그 겨울 하늘엔 언제나 한 줄기 빛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꼬리별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