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갈머리 게딱지

마음의 그릇을 비추는 거울

by Helia

소갈머리 게딱지라는 말은 들을 때마다 묘하게 서늘하다. 바닷가 모래 위에 덩그러니 남은 빈 껍질처럼, 속은 텅 비고 겉만 얄팍하게 남은 사람을 연상시킨다. 속 좁고, 사소한 일에도 요동치며, 결국 자기 그릇의 한계를 드러나는 모습. 누군가를 향해 이 말을 던지면 순간은 통쾌할지 몰라도, 곱씹을수록 부메랑처럼 나에게도 되돌아오는 말이다. 나는 과연 예외였을까.

살다 보면 크고 작은 관계 속에서 사람의 속 깊이가 드러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평소에는 넉넉하고 의젓해 보이던 이도, 자기 이익 앞에서는 돌연 게딱지처럼 옹색해진다. 남이 한 숟가락 더 먹었다고 인상 찌푸리고, 자기보다 주목받는 사람을 보면 은근히 깎아내리는 말부터 내뱉는 이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소갈머리다. 그리고 그 말은 단순히 타인을 겨냥하는 화살이 아니라, 결국 내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곤 했다.

나는 만나온 인연들을 떠올린다. 스쳐간 사람들, 오래 곁에 머물렀던 이들, 그리고 이제는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얼굴들. 그들이 보여준 태도는 각기 달랐지만, 결코 넓다고만 할 수는 없었다. 작은 오해에 발끈하고, 사소한 이익 앞에서 양보를 모르는 모습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얄팍한 마음으로 상대를 재단했고, 내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서둘러 관계를 닫아버린 순간들이 분명 있었다. 그 기억들은 부끄러웠지만 동시에 나를 다잡는 거울이 되었다.

소갈머리라는 건 단순히 그릇이 작다는 뜻을 넘는다. 남의 눈치를 지나치게 살피고, 한 줌의 손해에도 불안해하며, 결국은 자기 스스로를 옥죄는 마음의 습관을 뜻한다. 게딱지는 또 어떤가. 본래는 생존을 지키는 단단한 방패였겠지만, 속이 비어버린 채 남으면 그저 껍데기에 불과하다. 이 두 단어가 만나면, 겉만 멀쩡하고 속은 부실한 인간 군상의 초상이 선명해진다.

직장에서도, 친구 관계에서도, 가족 안에서도 게딱지들은 발견된다. 한때 내가 함께 일하던 상사는 보고서 한 줄에 이름이 빠졌다고 며칠을 삐져 있었다. 어느 친구는 밥값을 몇천 원 더 냈다며 끝내 못 잊고, 다시 만날 때마다 그 이야기를 꺼냈다. 시장통에서는 깎아달라는 손님에게 버럭 화를 내는 상인도 있었다. 길거리에서는 앞차가 1초 늦게 출발했다고 경적을 마구 울려대는 운전자도 있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게딱지를 뒤집어쓰고 살아가는 셈이다.

하지만 그 속을 조금만 헤집어보면, 사실 게딱지는 마음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자신이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누군가는 잃어버린 경험이 두려워서, 또 다른 누군가는 상처받을까 봐 미리 방어하기 위해 껍질을 키워왔을 것이다. 문제는 그 방어가 지나쳐 스스로를 가두고, 결국 텅 빈 껍데기만 남는다는 데 있다.

나는 가끔 바닷가에 앉아 게 껍질을 들여다본다. 바람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빈 껍질은 쓸쓸하지만, 묘한 교훈을 남긴다. 본래는 살아 움직이던 생명이었고, 그 속에는 파도와 함께한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단단함만 남고, 생명은 사라졌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닮았다. 껍데기만 남는 순간, 아무리 화려한 외피를 지니고 있어도 결국 바람에 흩날릴 뿐이다.

내가 진짜 두려워하는 건 타인의 소갈머리가 아니다. 내 안에서 자라나는 게딱지다. 작은 오해를 크게 키우고, 사소한 상처를 오래 붙잡으며, 결국 내 마음을 스스로 갉아먹는 그 습관. 그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적이다.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나를 들여다본다. 누군가의 말이 거슬릴 때, 먼저 내 속이 좁아진 건 아닌지 묻는다. 관계가 틀어졌을 때, 내가 게딱지처럼 닫혀버린 건 아닌지 돌아본다.

사람의 마음은 바다와 같다. 좁으면 좁은 대로, 넓으면 넓은 대로 세상이 보인다. 좁은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모든 게 불편하고, 누구 하나 마음에 차지 않는다. 반대로 넓은 마음으로 바라보면, 작은 결점도 파도 거품처럼 사라지고 만다. 결국 우리가 살아내야 할 길은 껍데기를 벗고, 깊고 넓은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것 아닐까.

나는 이제 남을 탓하기보다 내 속의 게딱지를 벗기는 데 집중하려 한다. 한 사람의 마음 그릇은 결국 선택의 결과다. 사소한 다툼을 크게 키울지, 흘려보낼지는 내 의지에 달려 있다. 누군가 나를 향해 ‘소갈머리 게딱지’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모욕이 아니라 경고로 듣고 싶다. 내 마음이 굳어가고 있다는 신호, 그래서 다시 한번 바다로 나아가야 한다는 알림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나는 만나온 인연들을 기억한다. 그들의 속 좁음에 실망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모습을 통해 나를 비춰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결국 모든 인연은 내가 더 넓어지기 위한 연습장이었다는 것을. 그들이 게 딱 지였듯, 나도 게딱지였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마음은 단단해지되 비지 않은 그릇으로 채워진다.

소갈머리 게딱지는 우리 안에 늘 잠들어 있다. 그러나 그것을 직면하고 넘어설 때, 비로소 진짜 삶이 시작된다. 바닷가에 흩어진 빈 껍데기가 햇빛에 반짝이듯, 우리의 좁음을 인정하는 순간 마음은 오히려 더 넓고 깊어질 수 있다. 언젠가 나는 누군가의 입에 다시 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나는 웃으며 대답하고 싶다. 나는 게딱지가 아니라, 바닷속을 헤엄치는 살아 있는 존재라고. 오늘도 파도와 함께 내 그릇을 키워가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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