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의 <네모의 꿈>,

네모난 일상 속 자유를 찾아서

by Helia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 한 곡이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멜로디였다. 기억 저편에서 익숙한 울림이 스치는데, 정작 원곡 가수의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다. 서둘러 검색창에 손가락을 올려 찾아봤지만, 예상과 달리 원곡 가수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 아이유가 부른 <네모의 꿈>이 가장 먼저 나를 맞았다. 순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아이유가 커버한 노래였구나. 그러나 이 곡의 뿌리는 더 오래전, 화이트(W.H.I.T.E.)라는 그룹의 1996년 앨범에 있었다. 유영석의 손끝에서 태어난 노래. 원곡의 이름은 희미하게 잊혔을지 몰라도, 아이유의 목소리를 통해 다시 살아난 선율은 오히려 지금 이 시대에 더 선명한 의미로 다가왔다.

‘네모의 꿈’이라는 제목은 늘 나를 멈추게 만든다. 꿈이라고 하면 자유롭고 유연한, 동그란 이미지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네모라니. 단정하고 각진, 규격화된 형상. 마치 칸막이처럼 사람을 가두는 모양. 그 단어 하나만으로도 뭔가 답답한 현실을 압축한 듯 느껴졌다. 나는 어릴 적 공책 위에 그려진 네모 칸을 떠올린다. 줄공책, 수학 문제집, 받아쓰기 공책. 늘 네모 칸 안에 글씨를 가두어야만 했다. 칸을 벗어난 글씨는 삐뚤빼뚤하다며 지적당했다. 잘 맞춘 글씨만 칭찬받았다. 그렇게 우리는 네모에 순응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그 네모들은 단지 종이 위에만 있지 않았다. 교실 창문 너머로 보이던 하늘도 네모였고, 집에 돌아와 보던 TV 화면도 네모였다. 책상 위 달력의 작은 칸마다 하루가 구획되어 있었고, 매일 들여다보는 스마트폰 화면도 또 다른 네모였다. 도시는 빌딩 숲이라는 거대한 네모 상자들로 가득했고, 회사 책상 위에는 또 다른 네모인 모니터가 놓여 있었다. 네모는 내 일상의 배경이자, 동시에 내 삶을 재단하는 규격이었다. 안정과 질서를 주었지만, 그 속에 머무르다 보면 숨이 막히기도 했다.

아이유의 목소리로 <네모의 꿈>을 들으면, 그 답답함 속에서 묘한 위로가 번져온다. 그녀의 담백하면서도 투명한 목소리는 “네모여도 괜찮아, 그 안을 어떻게 채울지는 네가 정하는 거야”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꿈은 네모라는 규격 안에 놓일지라도, 그것을 어떤 색으로 채워 넣을지는 결국 나의 몫이라는 메시지. 단순한 리메이크곡이 아니라,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는 위안이었다.

나는 종종 카메라 뷰파인더를 떠올린다. 사진을 찍을 때, 네모난 프레임 안에 세상이 담긴다. 바깥의 풍경은 잘려나가고, 오직 그 네모 안에 들어온 것만이 사진으로 남는다. 언뜻 제한처럼 보이지만, 그 네모 안에서야말로 무한한 세계가 열린다. 같은 하늘도, 같은 거리도, 프레임 안에 들어오면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제한이 곧 가능성이 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나는 네모를 단순한 감옥이 아니라 창으로 본다. 아이유의 노래는 그 창문을 활짝 열어주는 손길 같았다.

생각해 보면, 나의 어린 시절도 네모의 풍경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방학 숙제를 하던 줄공책의 칸, 시험지를 채우던 네모 칸, 교실 창밖으로 보이던 네모난 하늘. 나는 늘 그 네모 속에서 답을 찾아야 했다. 그게 정답이라고, 그게 꿈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꿈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네모 칸을 벗어나 번져나가는 낙서 같은 순간들이야말로 진짜 나였다는 것을. 누군가는 그것을 실패라 불렀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나만의 색깔이었다.

<네모의 꿈>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와, 지금 아이유의 목소리로 다시 들려올 때의 의미는 다르다. 90년대, 화이트의 원곡은 불안정한 사회 속에서 젊은이들의 막연한 꿈과 고민을 담았다. 그리고 지금, 아이유의 목소리는 그 시대의 감성을 이어받아 또 다른 세대에게 건네준다. “너희도 네모의 꿈을 꾸고 있지 않느냐”라고, “틀 안에 있어도 괜찮다”라고. 이 연결은 단순한 음악의 리메이크가 아니라, 세대를 잇는 다리였다.

나는 여전히 네모난 공간 속에서 하루를 보낸다. 네모난 방 안에서 글을 쓰고, 네모난 모니터로 세상을 접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안에서 다른 시선을 발견한다. 글자는 네모난 종이 위에서 시작되지만, 그 글자들이 모이면 나만의 세계가 된다. 사진은 네모난 프레임에서 출발하지만, 그 안에는 내 감정과 눈빛이 담긴다. 결국 네모는 나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나를 드러내는 무대였다.

아이유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네모는 더 이상 답답한 벽이 아니다. 그것은 무대를 둘러싼 프레임이고, 창문이고, 화면이다. 그 안에 어떤 그림을 그릴지는 나의 자유다. 때로는 삐뚤빼뚤하고, 때로는 색이 번져나가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내가 그리는 꿈이 네모 안에서 다시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이 수많은 네모들이 모여 하나의 큰 별자리가 될지도 모른다. 네모가 꿈을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꿈을 담아내는 또 다른 방식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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