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에 멈춘 줄 알았던 나, 여전히 걸어가고 있었다.
정말 나는 제자리에만 서 있었을까? 아니었다. 나는 착각하고 있었다. 나가 내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너무 낮게 잡고, 그 속에서 허우적대며 나를 과소평가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적어도 나만큼은 나를 그렇게 다루면 안 되는 거였다. 그런데 나는 왜 그 사실을 늦게야 알게 되었을까. 나는 멈춰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주 조금씩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내 발걸음을 무시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걸음이었으니까. 큰 성취나 드라마틱한 변화가 없으니까, 그저 같은 자리에서 맴도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작은 걸음도 걸음이었고, 작더라도 움직임은 분명히 움직임이었다. 내가 나를 몰라준 거였다.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나를 견디며 버텨왔는지, 내가 모른 척했던 것이다.
나는 종종 남들과 비교했다. SNS에 올라오는 반짝이는 성취, 누군가의 화려한 직장 이력, 누군가의 완벽한 몸매와 자기 관리, 누군가의 행복한 가족사진 앞에서 나는 초라해졌다. 나의 걸음은 너무 느리고, 나의 하루는 너무 평범했다. 그래서 자꾸만 내가 ‘제자리’라고 단정 지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잔인한 착각이었는지를 이제야 알겠다. 다른 사람들의 빛나는 순간과 내 일상의 순간을 같은 저울에 올려놓는 건 애초에 불공평한 비교였다.
내가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보면, 분명히 쌓여 있는 것들이 있다. 시험에 떨어졌어도 다시 도전했던 기록, 실패해도 다시 시도했던 습관,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마음이 다쳐도 또다시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었던 용기. 그건 분명히 멈춤이 아니라, 나아감이었다. 비록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건 나를 지탱해 온 증거였다. 나는 그걸 왜 인정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제 안다. 제자리에 멈춘 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내가 나를 의심하고 있을 때조차, 시간은 나를 앞으로 데려가고 있었고, 내 마음은 고요한 곳에서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다는 것을. 마치 눈에 잘 띄지 않게 자라는 나무뿌리처럼, 겉에서 보기엔 정지해 있는 듯 보여도 내 안은 자라나고 있었다.
나는 나를 낮추지 않기로 했다. ‘아직 부족하다’라는 말은 이제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아직 부족하다는 건 곧 아직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아직이라는 단어 속에는 희망이 숨어 있다. 나는 그 ‘아직’을 사랑하기로 했다. 아직 흔들리고, 아직 미완성이고, 아직 불안한 나. 하지만 동시에 아직 살아 있고, 아직 배우고 있고, 아직 걸어가고 있는 나. 그게 바로 여전히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혹시 당신도 나처럼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있지 않은가. 스스로를 제자리에 묶어두고 있지 않은가. 눈에 보이는 성과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작은 발걸음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멈춰 서서 생각해 보자. 오늘 하루를 버텨낸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눈물 흘리면서도 다시 일어난 것, 포기하고 싶으면서도 다시 붙잡은 것, 그것들이 바로 성장의 다른 이름이다.
나는 오랫동안 나에게 가장 가혹한 평가자였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괜찮아”라고 해도, 나는 내게 “아니야, 넌 아직 멀었어”라고 속삭였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게 속삭인다. “괜찮아, 너 정말 잘하고 있어.” 그렇게 말해주는 게 필요했다. 나는 더 이상 나를 억누르는 평가자가 아니라, 나를 지켜주는 보호자가 되기로 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큼은 내 편이 되어야 한다.
여전히 나는 두렵다. 여전히 나는 흔들린다. 여전히 나는 불안하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살아있다. 여전히 나는 버틴다. 여전히 나는 걸어간다. 이 ‘여전히’들이 모여 내 삶을 이루고, 나의 오늘을 만든다. 그게 바로 내가 여전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증거다.
나는 깨달았다. 제자리에 멈춘 게 아니라, 숨을 고르고 있었을 뿐이라는 걸. 내가 멈춘 것처럼 보였던 시간은, 사실 내 안이 차분히 자라는 시간이었음을. 나는 이제 그 시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맙다. 멈춰 있는 듯 보이는 동안에도 나는 앞으로 가고 있었다는 걸 알려줬으니까.
그러니 이제 나는 나를 더 이상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나는 불완전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나는 나를 믿는다. 여전히 나는 부족하지만, 그 부족함 속에서 나는 성장한다. 여전히 나는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 나는 단단해진다.
당신도 그렇다. 혹시 지금 제자리 같다고 느껴진다면,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마라. 당신의 걸음은 느려도 멈춘 게 아니다.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도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당신만큼은 당신을 알아줘야 한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다.
여전히 나는 살아있다. 여전히 나는 나를 알아가고 있다. 여전히 나는 내 속도로 나아가고 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충분하다. 나는 더 이상 제자리를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걸음을 존중하고, 나의 흔적을 믿는다.
그러니 앞으로도 나는 걸어갈 것이다. 여전히 나는 나를 믿으며, 여전히 나는 나를 사랑하며, 여전히 나는 나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