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중과 상연

죽음을 앞두고서야 말해진 늦은 사과

by Helia

상연이는 대체 왜 그랬을까. 왜 자신이 죽음을 앞두고서야 은 중에게 사과했을까. 그토록 많은 시간이 있었는데, 아프기 전에도 얼마든지 말할 수 있었는데, 왜 그때는 가시 돋친 말로 은 중을 찌르기만 했을까. 상처를 줄이려고 안락사를 택한 사람, 하지만 그 마지막 순간에 은 중을 붙잡고 “함께 가달라”고 부탁한 사람. 나는 아직도 상연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은 중의 입장이라면 어떠했을까. 나는 나 자신에게도 질문한다. 사랑했던 사람이, 동시에 가장 깊은 상처를 준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손을 내민다면 나는 과연 그 손을 잡아줄 수 있을까. 용서와 분노, 연민과 원망이 뒤엉킨 그 순간,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날, 은중은 런던의 어느 회색빛 병실에 있었다. 바깥 창문 너머로는 영국 특유의 축축한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고, 템스강 위로 안개가 흘러내리듯 퍼지고 있었다. 혹은 파리였을까. 에펠탑이 아닌 낯선 건물 지붕들 사이로, 낙엽이 소리 없이 내려앉는 풍경 속에서 두 사람은 마지막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도시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 공간 속에서 은 중과 상연이 다시 마주했다는 사실이었다.

은중은 기억했다. 오래전, 상연이 자신에게 던졌던 말들을.
“너는 늘 나를 답답하게 만들어.”
“네 곁에 있으면 내가 더 작아지는 것 같아.”
그 말들은 화살처럼 박혀 오랫동안 은 중의 가슴을 찔러왔다. 상연은 늘 그렇게, 자신의 불안을 은 중에게 전가하곤 했다. 마치 은 중이 곁에 있기 때문에 자신이 초라해진다고 믿었던 것처럼. 하지만 실은, 상연 자신이 견디지 못했던 그림자를 은 중에게 투사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중은 떠나지 않았다. 사랑은, 때때로 그런 비합리성을 품는다. 상처받으면서도 곁을 지키는 것.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을 감내하면서도, 언젠가는 서로의 마음이 닿을 거라 믿는 것. 은중은 오래도록 기다렸지만, 상연은 끝내 고백하지 않았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말, 미안했다는 말, 은 중에게 기대고 싶었다는 말. 그 모든 진심은 죽음을 앞두고서야 흘러나왔다.

상연은 말했다.
“은중아, 미안해. 내가 그때 왜 그렇게 말했는지… 나도 이제야 알 것 같아. 나는 네가 부러웠고, 그래서 자꾸만 상처 줬어.”

그 목소리는 힘이 없었지만, 오히려 그 힘없음이 진심을 증명했다. 은중은 눈을 감았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사과였다. 하지만 왜 이제야, 왜 이렇게 늦게야. 마음속에서는 억울함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살아 있을 때, 건강할 때, 웃으며 나눌 수 있었던 말들을 왜 지금 와서야 쏟아내는 걸까.

그리고 상연은 마지막 부탁을 했다.
“나는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아. 그래서 떠나려고 해. 안락사… 너도 알고 있지. 그런데 혼자 가는 게 너무 무서워. 은중아, 네가 함께 있어줄 수 있겠니?”

그 순간 은중은 숨이 막혔다. 사랑했던 기억과 미움의 기억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럼에도 그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왜였을까. 연민이었을까,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단지 마지막을 함께한다는 책임감이었을까. 그 대답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은 중이 결국 상연 곁에 남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상상한다. 병실의 창문 사이로 스며드는 희미한 빛,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있는 두 사람. 한쪽은 떠나려 하고, 다른 한쪽은 남아 있으려 하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완전히 하나였다. 마지막 순간에야 비로소 서로의 마음이 닿은 것이다.

그런데 묻지 않을 수 없다. 상연은 왜 평생의 시간 동안 은 중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죽음을 앞두고서야 진심을 고백했을까. 인간은 왜 그렇게 늦게서야, 너무 늦어버린 순간에야 자신의 본심을 말하는 걸까.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자존심이 더 중요했고, 두려움이 더 앞섰고, 그래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밀어내는 선택을 했던 걸까.

은중은 결국 상연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그 선택은 은 중에게도 깊은 상처가 되었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함께한다는 건, 단순한 동행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일부를 내어주는 일이었다. 남겨진 자의 삶은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까. 사랑과 분노, 용서와 미움, 그 모든 감정이 뒤섞인 채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였다면 과연? 상연의 부탁을 들어줬을까?
사랑했던 사람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것, 그것은 위로일까, 아니면 또 다른 굴레일까.
당신이라면 어떻겠는가. 상처 준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곁에 있어 달라”라고 한다면, 당신은 그 부탁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독자는 이 질문 앞에서 잠시 멈출 수밖에 없다. 사랑과 원망, 연민과 분노. 인간의 모든 관계가 그렇듯, 은 중과 상연의 이야기는 단순한 선악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상연이었고, 또 누군가에게 은 중이었다. 때로는 가시 돋친 말을 던지는 상연이었고, 때로는 그 말에 상처받으면서도 곁을 지키는 은 중이었다.

삶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누군가는 너무 늦게 사과하고, 누군가는 너무 늦게 용서한다. 그러나 그 늦음마저도 삶의 일부다. 은 중과 상연의 이야기는 그것을 보여준다. 끝내 닿지 못했던 마음이 마지막 순간에야 닿는 것, 그것이 인간관계의 아이러니이자 슬픔이다.

은중은 남겨졌다. 상연은 떠났지만, 은중 안에서 상연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 함께 해달라는 부탁, 그리고 그 모든 기억이 은 중의 삶 속에서 반복되며 울림이 되었다. 상연의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은 중의 삶 속에서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시작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이야기를 덮으며 다시 생각한다. 상연은 왜 죽음을 앞두고서야 사과했을까. 그 답은 아마 우리 모두의 삶 속에 숨어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금 당장 말하지 못하고 내일로 미루는 수많은 말들 속에.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우리는 늘 너무 늦게 말한다.

은 중과 상연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오늘, 가장 중요한 사람에게 할 말을 다 하고 있는가.
혹시 지금도 마음속에서만 맴돌고 있지 않은가. 혹시 내일로 미루고 있지 않은가.

삶은 길지 않다. 늦은 사과가 마지막 순간이 되기 전에,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해야 한다. 그게 은 중과 상연이 남긴 가장 큰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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