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시처럼 살기에는 인생은 짧다,

그래서 오늘을 붙잡는다

by Helia

우리는 누구나 시처럼 살고 싶다. 몇 줄의 문장에 마음을 응축하듯, 불필요한 것들은 덜어내고 빛나는 순간만 남기는 삶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산문 같다. 길고 복잡하고, 설명해야 할 것들이 많다. 눈 깜짝하면 하루가 가고, 또 한 해가 지나간다. 그래서일까. 한 편의 시처럼 살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다고, 나는 자주 느낀다.

시는 짧지만 오래 남는다. 단 몇 줄 속에 수십 년의 사랑과 고통을 담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은 그 반대다. 수십 년을 살아내야 하지만, 그 안에서 시만큼 농축된 순간을 발견하는 건 쉽지 않다. 하루가 끝나면 피곤함만 남을 때도 있고, 돌아보면 특별할 것 없는 날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사는 건 길지만, 느끼는 건 순간이다.

그런 순간들이 있다. 첫사랑 앞에서 말 한마디 못 하고 돌아서던 밤. 여름 장마 끝에 본 하늘의 쨍한 푸름. 울음을 삼키며 맞이한 새벽의 정적. 그때 느꼈던 감정은 길고 장황한 설명이 필요 없다. 짧지만 깊게 가슴에 박혔다. 삶이 산문처럼 길게 이어져도, 결국 기억 속에 남는 건 시 한 편 같은 순간들이다.

문득 이런 상상을 해본다. 내 삶에 편집기가 있다면? 의미 없는 장면들은 잘라내고, 후회와 지루함은 삭제하고, 빛나는 순간들만 이어 붙인다면 내 인생도 시 같아질까. 하지만 안다. 시는 아름다움만 모아놓은 것이 아니다. 아픔과 고독, 기다림과 실패도 함께 압축해 놓은 것이다. 그러니 삶도 마찬가지다. 버리고 싶은 장면들이 결국 내 시를 완성하는 재료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늘 짧다. 젊을 땐 시간이 무한히 이어질 것만 같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달력은 무섭게 넘어가고, 손에 잡히는 시간은 앞날이 아니라 뒷날이 되어버린다. 그때 깨닫는다. 시처럼 살고 싶다는 바람이 선택이 아니라 사치였음을. 하지만 동시에 알게 된다. 바로 그 짧음 때문에 삶이 더 절실해진다는 것을.

짧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우리를 시로 만든다. 오늘의 대화, 어제의 풍경, 잊히지 않는 한 사람의 표정. 그것들은 모두 지나간 뒤에야 문장으로 응고된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시를 쓰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미 매일 쓰고 있다. 다만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돌아보면 내 안에도 이미 수많은 시가 남아 있다. 사랑을 시작하던 봄의 떨림, 이별을 통과하던 겨울의 차가움, 아무도 모르게 울던 밤의 고독. 그 순간들은 긴 이야기가 아니었다. 단 몇 줄의 문장으로도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강렬했다. 삶은 스스로 시가 되기를 거부하는 듯하지만, 결국 시로 남는다.

문제는 우리가 그걸 자각하지 못하고 흘려보낸다는 것이다. 오늘도 ‘별일 없었다’며 넘어가지만, 사실은 그 ‘별일 없음’ 속에도 작은 시들이 숨어 있다. 카페에서 마주친 낯선 이의 미소, 길모퉁이 가을빛 은행잎, 고양이가 품에 파고들던 따뜻한 체온. 이런 것들이야말로 삶의 문장을 빛나게 한다.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거대한 시집을 쓰려고 애쓰지 말자. 그저 하루에 한 줄, 마음에 남는 문장을 발견하고 기록하자. 언젠가 그것들이 모여 내 삶의 시가 될 테니까. 긴 설명 대신 짧은 고백으로, 산문 같은 하루에서 시 같은 순간을 붙잡는 것. 그것이 내가 짧은 인생을 감당하는 방법일 것이다.

결국 삶은 여백이 있기에 아름답다. 시가 소설보다 강렬한 이유는 말하지 않은 부분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인생도 그렇다. 다 채우지 못하고, 다 설명할 수 없기에 더 빛난다. 우리는 빈칸을 안고 살아가지만, 그 빈칸 덕분에 삶은 시가 된다.

짧은 인생. 한 편의 시처럼 살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 짧음 때문에 순간은 더욱 선명해진다. 긴 삶을 다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한 줄의 시 같은 문장은 반드시 남는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내 삶을 쓴다. 아직 끝나지 않은, 미완의 시를.

그리고 묻는다.
짧은 인생, 당신은 지금 어떤 시를 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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