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탓이 아닌 일까지 짊어지지 않기로 했다
아씨, 또 내 탓이랜다.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틀어지면 꼭 내 이름부터 거론된다.
마치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 이유가 전부 내 탓이라도 되는 듯.
회의 때도 그랬다.
상사가 무겁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건 네가 맡은 부분이지?”
그 한마디면 모든 게 끝난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꽂히고, 공기가 싸늘해진다.
변명할 수도, 침묵할 수도 없는 그 순간.
나는 그냥 웃는다.
“네, 다음부터는 조심할게요.”
그 말 뒤에 삼켜지는 억울함이 목구멍에 돌처럼 남는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편리한 희생양이 됐을까.
틀리면 내 탓, 맞으면 다 같이 한 일.
이상할 정도로 분담의 공정함은 실패할 때만 사라진다.
내가 만만해서일까, 아니면 그냥 침묵이 쉬워서일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책임을 진다기보다,
책임을 지울 대상을 찾는다.
‘탓’은 그렇게 시작된다.
누군가의 마음이 불편해질 때, 가장 먼저 던지는 단어.
그 순간, 잘못의 방향은 정확히 나를 향한다.
그게 익숙해질수록 나는 점점 작아졌다.
어릴 때도 비슷했다.
엄마는 늘 말했다.
“네가 말을 좀 들었으면 이 꼴은 안 났지.”
그 말이 나를 길들였다.
누군가 화를 내면, 그건 내 탓일 거라 생각했다.
눈치 보고, 맞춰주고, 다치지 않으려면 내 잘못으로 끝내는 게 편했다.
그렇게 배운 말이 “괜찮아요, 제 잘못이에요.”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깨달았다.
그건 겸손이 아니라 자기 파괴였다.
누군가의 감정까지 대신 짊어지는 건
결국 나를 지우는 일이었다.
나는 늘 사과하고, 늘 이해하고, 늘 참았다.
그런데 정작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탓’이라는 단어를 곱씹어 본 적 있다.
짧고 단단한 발음, 탁 하고 닫히는 어감.
그 한 글자에 얼마나 많은 비난이, 얼마나 많은 회피가 담겨 있는지.
누군가의 탓이 된다는 건, 이름표가 바뀌는 일이다.
나는 어느새 “누구의 잘못”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래서 요즘은 묻는다.
정말 내 탓일까?
그때 내가 다르게 했다면 모든 게 괜찮았을까?
생각해 보면 그렇지도 않다.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누군가를 탓해야만 마음이 편한 사람들에게
그냥 가장 가까운 이름이 내 것이었을 뿐이다.
탓은 권력이다.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있느냐는,
누가 더 위에 있느냐의 문제다.
탓하는 사람은 가벼워지고,
탓받는 사람은 무거워진다.
그 불균형 속에서 관계는 틀어지고,
나는 점점 내 안으로 움츠러든다.
어느 날, 너무 억울해서 소리쳤다.
“그건 제 잘못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공기가 얼어붙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내 목소리를 들었다.
목이 떨리고, 눈물이 핑 돌았지만,
이상하게도 속이 시원했다.
그 한마디는 오래 묵은 먼지를 털어내듯 나를 깨끗하게 만들었다.
그 후로 나는 작은 일에도 경계를 세운다.
“그건 제 영역이 아니에요.”
“그건 제가 결정한 부분이 아닙니다.”
이제는 단호해지려 한다.
그게 무례로 보이든, 차갑게 들리든 상관없다.
내가 더 이상 아무 이유 없이 탓받지 않기 위해서다.
탓은 손쉬운 폭력이다.
말 한마디로 타인의 하루를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탓하는 사람은 늘 가볍다.
“그냥 말한 건데 왜 그렇게 예민해?”
그 말이 가장 잔인하다.
가벼운 말이 누군가에겐 멍이 되고 흉이 된다.
나도 솔직히 완벽하진 않다.
때로는 나도 누군가를 탓한다.
“너 때문이잖아.”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나는 예전의 나를 떠올린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상처 주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후회한다.
탓은 돌고 돌아 결국 자신에게 온다.
이제는 탓보다는 이해를 택하려 한다.
왜 그랬을까, 무슨 사정이 있었을까.
그렇게 묻는 순간, 관계의 온도가 달라진다.
탓은 벽을 세우지만, 이해는 문을 연다.
나는 벽보다 문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날엔 여전히 억울하다.
“또 내 탓이야?”
그 말이 속에서 불처럼 치민다.
하지만 이제는 그 불을 삼키지 않는다.
그 불빛으로 나를 비춘다.
그래, 내 탓이 아닐 수도 있고, 어쩌면 조금은 내 탓일 수도 있겠지.
그걸 구분하는 힘이 생겼다는 것,
그게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한때는 모든 게 내 잘못인 줄 알았다.
이제는 안다.
모든 잘못이 내 탓이 아닌 것처럼,
모든 옳음도 내 공이 아니다.
세상은 그렇게 복잡하고, 사람의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가끔은 내 안의 작은 목소리가 말한다.
“그래도 혹시 네가 조금만 더 했더라면…”
그럴 땐 조용히 웃는다.
“이젠 됐어. 그만 내 탓하지 말자.”
그 말은 나를 향한 위로이자, 선언이다.
밤이 되면 하루 동안 들었던 탓들이 떠오른다.
누가 나를, 혹은 내가 누군가를.
그 모든 손가락질을 생각하며 커튼을 닫는다.
바깥의 불빛이 희미하게 비치고,
방 안이 서서히 어둡게 물든다.
나는 그 어둠 속에서 다짐한다.
이제는 탓하지 않고 살기로.
탓받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는 내 안을 상처 내지 않기 위해서.
누군가를 탓할 때, 그건 타인을 향한 분노가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을 향한 불만일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그걸 내려놓는다.
비난의 손끝 대신, 이해의 손바닥을 내민다.
그게 진짜 강함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고,
사람들은 여전히 누군가의 탓을 찾는다.
하지만 나는 그 속에서 조금은 달라지고 싶다.
누가 뭐래도, 나는 오늘도 내 안의 목소리를 지킨다.
이제는 누가 뭐라 해도 내 탓이라고 하지 않으려 한다.
그건 더 이상 겸손이 아니라, 나를 잃는 일이니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만 내 탓으로 남기고,
그 외의 모든 손가락질은 바람처럼 흘려보낼 것이다.
탓은 여전히 세상에 넘쳐나지만,
이제 나는 그 중심에 서 있지 않다.
나는 오늘도 내 이름을 되뇌며 조용히 웃는다.
“그래, 이번엔 내 탓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