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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보는 세상은 어떤가요?

다정한 혼란

by Helia

어느 날, 누군가 내게 물었다.
“당신이 보는 세상은 어떤가요?”

그 짧은 질문이 내 시간의 바늘을 멈춰 세웠다.
매일같이 마주하는 세상이건만, 그걸 단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좋다’ 혹은 ‘나쁘다’로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다층적인 무언가.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기억 속 세상의 단면들을 더듬기 시작했다.

나에게 세상은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무대다.
어느 날은 햇살이 부서지는 공원의 벤치처럼 따스하고,
또 어떤 날은 붉은 노을이 삼킨 골목처럼 쓸쓸하다.
그 무대 위에서 나는 때로 배우이고, 때로 관객이다.
때론 조명을 받으며 중심에 서고, 때론 뒤편에서 조용히 바라본다.
세상은 결코 한 가지 색으로 물들지 않는다.
무지갯빛처럼 감정이 번지고, 그 사이에는 침묵과 여운이 섞여 있다.
빛이 강한 곳에는 그림자도 선명하다. 그럼에도 나는 빛을 택한다.

어릴 적 나는 세상이 ‘어른들의 것’이라고 믿었다.
어른들은 세상의 구조를 알고, 그 질서를 움직이는 존재라 여겼다.
하지만 자라며 깨달았다. 세상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어른도, 아이도, 그 누구도 세상의 진짜 모양을 명확히 그릴 수 없었다.
세상은 각자의 눈으로 그려내는 풍경,
마음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그림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잿빛 도시의 창문이고,
누군가에게는 바다 끝의 수평선이었다.

그래서일까. 나에게 세상은 질문으로 가득한 책 같다.
페이지마다 다른 질문이 쓰여 있고,
그 물음에 답을 써 내려가는 일이 곧 삶이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떠나야만 할까?”
“용서란 가능한 걸까?”
“지금, 당신은 행복한가요?”
어떤 질문에는 답을 적지 못한 채 페이지를 넘긴다.
어쩌면 답이 없다는 사실조차 답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배우는 중이고, 배운 만큼 잃고, 잃은 만큼 또 배워간다.

나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자주 생각한다.
‘지금 이 프레임 속의 세상이 전부일까?’
카메라 렌즈는 세상을 선택하게 만든다.
무엇을 찍을지, 어디에 초점을 둘지,
그 결정은 곧 내가 보고 싶은 세상을 고르는 일이다.
그래서 내가 보는 세상은 찰나와 찰나가 이어 붙은 필름 같다.
초점이 흔들릴 때조차, 그 속에는 숨결이 찍혀 있다.
무너진 벽돌 틈에서 자란 들꽃,
비 오는 날 유리창 위로 흐르는 빗줄기,
지하철 유리 너머 졸고 있는 아이의 얼굴.
그런 장면들을 마주할 때면, 세상은 아직 다정하게 숨 쉬고 있다.

물론 그 아름다움은 언제나 단단하지 않다.
때로는 얇고, 때로는 쉽게 깨진다.
그럼에도 나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세상에는 늘 의외의 순간이 존재하니까.
한 줄의 문장이 마음을 울리고,
낯선 이의 미소가 하루를 바꾸며,
누군가의 따뜻한 한마디가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순간처럼.
그 작고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세상을 다시 살아보게 한다.

어느 날의 세상은 유난히 시끄럽다.
끝없는 속도 경쟁, 피로, 무례, 그리고 비교.
그럴 때면 세상이 마치 두꺼운 벽처럼 느껴진다.
단단하고, 차갑고, 가까워질수록 더 멀어지는 벽.
그러나 그 벽 틈 사이로도 빛은 들어온다.
그 빛은 언제나 사람의 다정함에서 시작된다.
문을 살짝 열어주는 손,
버스 안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눈빛,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익숙한 목소리.
그런 온기들이야말로 내가 보는 세상의 진짜 얼굴이다.
세상을 본다는 건, 결국 마음을 배우는 일이다.

나는 가끔 세상을 바라보며 혼란스럽다고 느낀다.
모순되고, 불완전하며, 쉽게 변하는 세상.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도 사람의 온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보는 세상은 다정한 혼란이다.
완벽하지 않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진심이 피어난다.
다정함, 혼란, 온기 —
그 세 가지가 뒤섞여 세상의 결을 만든다.
누군가는 다름을 부딪힘이라 부르겠지만,
나는 그 다름을 이해의 시작이라 부르고 싶다.

서로의 시선이 다르기에, 세상은 더 넓어진다.
내가 보지 못한 곳을 누군가 보고,
누군가 놓친 빛을 내가 대신 담는다.
그렇게 시선과 시선이 겹쳐질 때,
세상은 한 겹 더 깊어지고, 조금 더 다정해진다.
나는 그 다정한 혼란 속을 걸으며 매일 세상을 배운다.
카메라로, 글로, 혹은 마음이라는 렌즈로.
어제의 세상과 오늘의 세상은 다르고,
내일의 세상은 또 다를 것이다.
그 변화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고 싶다.

누군가 내게 다시 묻는다면,
“당신이 보는 세상은 어떤가요?”
이젠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배우는 중이에요. 여전히 낯설고, 여전히 서툴고,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스럽습니다.
그래서인지 자꾸 보고 싶고, 기록하고 싶고,
때로는 안아주고 싶어요.”

세상을 향해 눈을 뜬다는 건,
곧 자신을 향해 마음을 여는 일이다.
내 시선이 머무는 곳에 내 마음이 닿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보는 세상은 그 사람이 품고 있는 감정의 풍경이다.
그래서 당신이 보는 세상도 나와는 다를 것이다.
그 다름이 충돌이 아니라 이해의 시작이 되기를.
서로의 시선을 빌려,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기를.

그리고 언젠가, 모든 시선들이 모여
하나의 빛이 되어 서로에게 조용히 묻기를 바란다.
“당신이 보는 세상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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