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 속에서 피어난 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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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vo Pärt – Spiegel im Spiegel (거울 속의 거울)
한겨울이었다.
모든 게 멈춘 듯 보이던 계절. 사람들은 따뜻한 실내로 숨어들었고, 거리는 차가운 바람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때 나는 가장 많이 피어났다. 얼어붙은 계절 속에서도, 내 안의 무언가가 살아 있었다. 그건 아마도 ‘끝’이라고 믿었던 나 자신이, 여전히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 시절을 ‘여정의 겨울’이라 부른다.
길을 잃은 계절, 혹은 길 위에 선 계절. 삶이란 늘 그런 식이었다. 계절이 바뀌면 내가 바뀌었고, 바뀐 나로 또 다른 길을 걸었다. 누군가에겐 휴식이었을 겨울이, 내겐 하나의 통과의례였다. 얼어붙은 시간 속에서 나는 울었고, 깨달았고, 다시 일어섰다.
그때의 나는 지쳐 있었다. 사랑도, 일도, 사람도 모두 무게로만 느껴지던 시기였다.
내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세상은 두 걸음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 날에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차가운 창가에 앉아 흩날리는 눈발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긴 겨울도 언젠간 끝나겠지.” 하지만 끝은 쉽게 오지 않았다.
겨울은 잔혹할 만큼 느렸다.
그 느림 속에서 나는 자꾸만 내 마음의 결을 들여다봤다.
왜 이렇게 아픈 걸까, 왜 이렇게 외로운 걸까.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나는 세상을 원망하며 살았지만, 사실은 나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는 걸.
그 순간부터 모든 게 달라졌다.
나는 내 안의 겨울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차갑지만 정직한 계절, 모든 게 벗겨져 본질만 남는 시간. 겨울은 그런 계절이었다.
사람의 관계도, 감정도, 그 어떤 꾸밈도 다 벗겨내고 나면 결국 ‘나 자신’만 남는다.
그 안에서 나는 묻는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나는 멈췄다.
그러나 그건 끝이 아니었다.
겨울은 멈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준비의 시간이다.
나무는 뿌리를 더 깊게 내리고, 강은 얼음 밑으로 여전히 흐른다.
겉으로는 고요해도, 그 속에서는 생이 계속 자란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나는 분명히 자라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분명히 자라고 있었다.”
그 문장은 내 지난겨울을 가장 잘 설명한다.
내가 견딘 건 계절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누군가는 나를 강하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매일 무너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섰다.
그게 나였다.
그게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겨울의 길 위에서 나는 새 한 마리를 보았다.
작고, 여리지만 단단한 존재.
눈보라 속을 가로지르며 날던 그 새는, 마치 내 안의 의지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새에게 이름을 붙였다. ‘꽃새’.
겨울에도 피어나는 생명, 추위 속에서도 노래하는 용기.
그때 나는 깨달았다.
삶이란 결국 ‘떠나는 일’이 아니라 ‘견디는 일’이라는 걸.
모든 계절은 지나가지만, 견디는 동안만큼은 나의 것이다.
꽃새처럼 나는 내 여정을 견뎌야 했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도,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내 목소리를 찾았다.
사람들은 자주 말한다.
“겨울은 외롭다”라고.
맞다, 겨울은 외롭다.
하지만 그 외로움이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다.
누군가 곁에 있어도 결국 혼자서 견뎌야 하는 시간, 그것이 겨울이다.
그리고 그 겨울을 건넌 사람만이 봄의 의미를 안다.
나는 내 안의 봄을 기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던 온기 대신, 스스로 불을 켰다.
낮은 불빛이었지만, 내 방 안을 따뜻하게 비췄다.
그 불빛이 마음을 녹였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나는 여전히 괜찮은 사람이다.’
겨울이 나를 얼게 했지만, 완전히 죽이지는 못했다.
그건 내 안의 생명력이, 끝내 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겨울을 지난다.
누군가는 상실로, 누군가는 후회로, 또 다른 누군가는 공허로.
하지만 기억하자.
겨울은 끝나기 위해 오는 게 아니라, 새로 피어나기 위해 오는 것이다.
나는 내 겨울을 안다.
그 고요 속에서 얼마나 울었는지도, 얼마나 버텼는지도.
그 모든 시간은 나를 작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내 안에 단단한 줄기를 세웠다.
그 줄기 끝에서 봄은 반드시 피어날 것이다.
아직은 보이지 않아도.
이제 나는 두렵지 않다.
찬 바람이 불어도, 눈이 내려도, 그 속에 내가 있다면 괜찮다.
나의 여정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으니까.
이 길의 끝이 어디일지 몰라도, 나는 오늘도 나를 믿는다.
멈춰 선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겨울을 건너며 나는 배웠다.
사랑은 떠나도, 나의 길은 남는다는 것.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견디는 순간에 깃든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멈춤 속에서도 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봄은 결국 온다.
하지만 그 봄은 이전의 봄과 다를 것이다.
눈 속에서 피어난 꽃은 더 강하고, 더 오래간다.
그 꽃이 바로 나다.
겨울의 여정 끝에 피어난, 나만의 겨울꽃.
나는 오늘도 그 꽃을 안고, 한 걸음 더 걸어간다.
그리고 문득 하늘을 본다.
차가운 공기 속, 작지만 선명한 새 한 마리가 보인다.
그 새가 바로 나다.
얼어붙은 계절에도 날아오르는 존재.
나는 더 이상 겨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안다.
겨울은 나를 얼게 하기 위해 온 게 아니라, 나를 피어나게 하기 위해 왔다는 걸.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여전히 날고 있다.
꽃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