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삶이 가르친 교실

by Helia

학교는 끝났지만, 나는 여전히 수업 중이다. 종이 울리지 않아도, 교탁이 없어도, 인생은 매일 나를 부른다. 오늘의 과목은 기다림이고, 내일의 과목은 용서다. 어떤 날엔 상실이, 어떤 날엔 침묵이 주제다. 그 모든 수업이 나를 만든다.

처음 배운 건 ‘기다림’이었다.
어릴 적 겨울 저녁, 버스정류장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던 기억이 있다. 손끝은 시리고 입김은 하얗게 흩어졌지만 나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기다림이란 그때는 단순한 행동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인생의 첫 번째 수업이었다. 기다림은 인내를 가르쳤고, 인내는 믿음을 길렀다. 세상은 그렇게 내게 ‘조급함의 시험’을 냈다. 나는 매번 불안에 흔들렸지만, 결국 기다림의 끝에서 깨달았다. 시간이란 건 언제나 느리게 오지만, 한 번도 나를 배신한 적이 없다는 것을.

다음 수업은 ‘상실’이었다.
예고 없이 찾아와, 모든 걸 무너뜨리고 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꿈을 놓치고, 마음 한가운데가 텅 비었다. 그 빈자리를 메우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상실은 채워지는 게 아니라, 껴안고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숙제였다.
그 상처를 통과하면서 나는 배웠다. 잃는다는 건 사라지는 게 아니라, 형태를 바꿔 내 안에 머무는 일이라는 걸. 떠난 사람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다른 자리에서 나를 지켜본다. 상실은 그렇게 내 안의 사랑을 더 깊게 만드는 교과서였다.

‘용서’의 수업은 훨씬 어려웠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보다, 나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 더 고통스러웠다. 후회는 늘 교실 한쪽 자리를 차지했고, 죄책감은 나를 시험했다. “왜 그때 그렇게밖에 하지 못했을까.”
그 물음표들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알았다. 용서란 잘못을 잊는 게 아니라, 그 잘못을 껴안고도 살아가는 힘이라는 걸. 내가 나를 용서했을 때, 세상도 나를 놓아주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

사랑의 수업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했다.
처음엔 달콤하고, 끝은 서늘했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같을 줄 알았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다르게 흘렀다.
그 안에서 나는 배웠다. 사랑은 상대를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라는 걸. 누군가를 깊이 사랑할 때, 그 사람을 통해 나의 결핍이 드러났다. 그래서 사랑은 늘 나를 성찰하게 했다. 그 끝에서 알았다. 진짜 사랑은 머무는 용기라는 것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힘. 그것이 사랑의 진도표였다.

삶은 어느 날 ‘침묵’의 수업도 열었다.
말이 넘치는 세상에서, 나는 고요를 배우는 법을 익혔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 침묵 속에 깃든 다정함.
어느 날 친구가 눈물로 무너졌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신 그의 옆에 앉아 있었다. 그때 알았다. 위로는 말이 아니라 ‘존재’로 전달된다는 것을. 침묵이야말로 마음의 언어였다.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했다.

‘실패’의 수업은 가장 냉정했다.
세상이 내게 낙제점을 줄 때마다, 나는 자격이 없는 사람처럼 느꼈다. 그러나 그 바닥에서 나는 가장 중요한 걸 배웠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무너져본 사람만이 다시 세울 수 있다. 넘어짐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예행연습이었다. 그때의 눈물은 잉크처럼 마음에 번져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삶의 수업에는 쉬는 시간도 없다.
그렇다고 늘 괴로운 것만은 아니다. 뜻하지 않은 기쁨, 예기치 못한 따뜻함이 불현듯 찾아온다. 그것은 마치 선생님이 내주는 ‘보너스 문제’ 같다. 나는 여전히 완벽한 답을 적지 못하지만, 이제는 정답을 맞히려 애쓰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 머무르는 일이다.
이 수업의 목적은 정답이 아니라, 끝까지 배우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어느새 나는 내 인생의 교실을 스스로 꾸리게 되었다.
책상 위에는 지나온 기억들이, 노트에는 아직 배우지 못한 단원들이 남아 있다.
때때로 그 노트를 펼쳐보면, 눈물 자국이 남아 있는 페이지가 있다. 그러나 그 흔적조차 이제는 아름답다. 실패와 후회, 사랑과 상처가 뒤섞인 그 노트가 곧 나의 인생 교재였음을 안다.

나는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다.
누군가를 끝까지 믿는 일, 자신을 함부로 미워하지 않는 일, 사소한 일에도 감사하는 일.
그런 과목은 시험 범위에도, 교과서에도 없지만 가장 중요하다.
세상은 나를 계속 가르친다.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냉정하게.
나는 그 수업을 빠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밤이 깊을수록 생각이 많아지는 건, 아마 그때가 하루의 복습 시간이라서일 것이다.
오늘 배운 감정들을 다시 떠올리고, 내일의 마음을 준비하는 시간.
나는 매일의 수업일지를 쓴다. “오늘도 조금은 배웠다.”
그 문장을 노트 끝에 적으며, 조용히 숨을 고른다.

삶의 수업은 평생 과정이다.
졸업도, 휴강도 없다.
때로는 눈물로 출석을 부르고, 때로는 웃음으로 답한다.
결석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다시 돌아올 용기다.
내가 여전히 배우고 있다는 사실 하나면 충분하다.

오늘의 교탁 위에는 정답 대신 ‘경험’이 놓여 있다.
칠판에는 ‘내일’이라는 단어가 흐릿하게 남아 있다.
나는 그 위에 조심스레 덧쓴다.
“삶은 여전히 나를 가르치고 있다.”
그 문장이 나의 교재이자 숙제다.

이제 나는 안다.
진짜 수업은 세상이 아니라, 내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누가 평가하지 않아도, 나는 배워간다.
사랑에서 인내를, 실패에서 용기를, 상실에서 믿음을.
그 모든 과목이 내 안에서 하나로 이어진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출석한다.
내 삶의 교실, 그 맨 앞자리에서 조용히 노트를 펼치며.
‘수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제 막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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