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그 사람의 체온이 남아 있다면
지금 내 상태가 딱 그렇다.
이마를 짚었을 때 느껴지는 약간의 미열, 온몸이 두드려 맞은 듯 아프고, 낮에 먹은 티라미수의 카페인 때문인지 잠도 쉽게 오질 않는다.
머릿속은 뜨겁게 흐려지고, 생각은 자꾸 같은 곳을 맴돈다.
병이라면 병이고, 그리움이라면 그리움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열이 싫지 않다.
마치 누군가를 떠올릴 때마다 온몸이 조금 더 뜨거워지는 것 같다.
나는 이 미묘한 열을 알고 있다.
이건 단순한 피로도, 단순한 감기도 아니다.
이건 사랑의 미열이다.
이유 없이 오르고, 쉽게 가라앉지 않는 열.
아프면서도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그 애매한 온도.
누군가를 사랑할 때마다 내 몸이 먼저 알아챘다.
가슴이 먼저 반응하고, 손끝이 떨리고, 눈빛이 달라졌다.
생각보다 몸은 정직하다.
마음이 부인해도, 체온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 사람을 떠올리는 순간, 온도가 올라간다.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사람들은 사랑을 불처럼 뜨겁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불은 타오른 뒤 재로 남지만,
미열은 오래 남는다.
쉽게 꺼지지 않고, 천천히 스며든다.
불은 눈에 보이지만, 미열은 몸속 깊은 곳에서 은근하게 데운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요란하지 않지만 오래가는 온기.
사랑의 시작은 언제나 작다.
별것 아닌 인사 한마디, 문득 마주친 눈빛,
아무렇지 않게 건넨 “오늘 하루 어땠어요?” 그 한 문장.
그 한 줄이 내 체온을 바꿔놓는다.
심장은 그 문장 속의 온기를 먼저 알아차린다.
그날 이후, 커피 향이 다르게 느껴지고,
바람의 온도도 조금은 따뜻해진다.
그 사람의 이름 하나로 계절이 바뀌는 것 같다.
사랑은 몸이 먼저 기억한다.
열이 오르고, 숨이 가빠지고, 마음이 불안해진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웃게 된다.
사랑의 미열이란 그런 것이다.
불편하면서도 놓치고 싶지 않은 감각.
아프지만, 동시에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증세.
그 온도는 37.3도쯤이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식지도 않은,
인간의 체온과 거의 같은 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온도에서 가장 인간다워진다.
그 체온이 바로 우리가 느끼는 ‘사랑의 현실’이다.
하지만 그 미열은 오래가지 않는다.
언젠가 식는다.
열은 본래 그렇게 사라진다.
사람들은 그걸 두려워한다.
“사랑이 식었어.”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사랑이 식은 게 아니라, 안정된 것이다.
끓던 감정이 평온한 온도로 돌아간 것뿐이다.
그건 실패가 아니라 성숙이다.
나는 한때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감정이 식지 않게 붙잡으려 애썼다.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사랑은 더 빨리 식었다.
사랑은 열이 아니라 온도다.
너무 뜨겁게 달구면 결국 금세 식는다.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너무 가까우면 화상을 입고,
너무 멀면 냉기가 돈다.
사랑의 진짜 거리는
서로의 체온을 느낄 만큼만 가까운 곳이다.
그 거리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말보다 온기로 대화한다.
사랑을 미열로 느낄 줄 아는 사람은,
이별도 다르게 맞는다.
그들은 사랑이 끝났다고 믿지 않는다.
단지 열이 가라앉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
몸속 어딘가에는 여전히 그 사람의 온도가 남아 있으니까.
문득 들려오는 노래 한 소절,
카페의 조명,
비 오는 오후의 공기.
그 안에도 그 사람의 체온이 스며 있다.
“아, 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여전히 내 안에 있구나.”
그 깨달음 하나로 충분하다.
그 사람은 떠났지만, 사랑은 여전히 나를 데운다.
사랑은 결국 나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일이다.
누군가를 만나고, 웃고, 상처받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체온을 배운다.
고독한 사람은 차갑고, 사랑하는 사람은 따뜻하다.
그 차이는 크지 않다.
짧은 대화한 줄, 밤의 안부 문자,
손끝에 닿는 온기 하나면 충분하다.
그 사소한 것들이 모여 마음의 불씨가 된다.
나는 이제야 안다.
사랑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아주 미세한 온도의 변화라는 걸.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뜨거운 열정보다 잔잔한 온기다.
그 온기는 오래가고, 조용히 스며든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미열을 오래 품어주는 일이다.
이유 없이, 그저 따뜻하기 때문에 곁에 있는 것.
사랑을 오래 하면 식는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건 ‘식는 것’이 아니라 ‘안정되는 것’이다.
불이 꺼져야 재가 남고,
재는 또 다른 불씨를 품는다.
그 불씨가 언젠가 다시 온도를 높인다.
사랑은 그렇게 순환한다.
식었다가, 다시 데워지고,
또다시 미열로 돌아온다.
세상이 점점 차가워질수록,
나는 이 미열이 고맙다.
사람들이 마음보다 계산을 먼저 세우는 시대에,
아직 내 안 어딘가가 뜨거워질 수 있다는 건 다행이다.
완전히 식지 않은 마음,
아직 미약하게 데워지는 가슴.
그건 살아 있다는 증거다.
혼자 열이 나는 밤에도,
그 열이 사랑의 잔재라고 믿으면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사랑은 약간의 미열처럼,
우리를 아프게 하면서도 살게 만든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그 온도에서
우리는 가장 인간다워진다.
완전히 식지 않은 마음이 있다는 건
아직 누군가를 향해 열려 있다는 뜻이다.
오늘도 나는 내 안의 그 미열을 느낀다.
이마를 짚으면 여전히 남아 있는 따뜻함,
그게 나의 사랑이고, 나의 삶이다.
그리고 혹시,
아직도 그 사람의 체온이 남아 있다면—
그건 아직 사랑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미열이 바로 당신의 마음이다.
그 온도가,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랑의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