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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얼음 밑의 약속

by Helia

모두가 잠든 겨울밤, 얼음 밑에서 단 한 마리의 숨이 깨어난다. 작고 느린 몸을 가진 아기 두꺼비가 낙엽 더미 속에 몸을 숨긴 채, 아주 오래된 본능으로 숨을 고른다. 차갑고 고요한 세상 속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단지 겨울을 버티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의 생을 증명하는 일이다.

두꺼비는 늘 오해받았다. 느리고, 투박하고,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로. 그러나 그 속에는 세상을 먼저 꿰뚫어 본 눈이 있다. 땅속의 기운을 읽고, 비를 예측하며, 자신이 언제 깨어나야 할지를 알고 있다. 옛사람들은 그를 신령스러운 존재라 불렀다. 나라의 흥망을 예언하고, 불보를 지키며, 장마를 불러오는 생명. 하지만 이 이야기 속의 두꺼비는 그 어떤 전설보다도 작고, 그 어떤 신보다도 인간적이다.

봄이 오기 전까지, 그는 아무도 모르게 세 번의 겨울을 겪는다. 얼음 밑에서도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의 소리와 함께 그는 기억한다. 자신이 이곳에 남은 이유를. 언젠가 눈이 녹고, 첫 햇살이 얼음 위로 번질 때, 그 빛 속에서 다시 숨을 쉬기 위해.

두꺼비의 몸은 울퉁불퉁하다. 하지만 그 굴곡마다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누군가에게 밟히고, 비에 씻기고, 돌에 부딪히며 얻은 상처들. 그 흉터들이 바로 생의 지도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는 곳에 울퉁불퉁한 마음의 흉터를 품고 산다. 그러나 그 흉터야말로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세상과 부딪히며 얻은 지혜다.

겨울 연못의 끝, 아주 작은 숨이 들린다. 두꺼비는 여전히 버티고 있다. 세상은 그를 잊었지만, 그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언젠가 다시 햇살이 비추면, 그는 천천히 땅 위로 올라와 세상을 향해 첫울음을 터뜨릴 것이다.

그 울음은 ‘살았다’는 외침이자,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약속이다.
살아남는다는 건, 끝내 사라지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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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쌓습니다. 기억과 계절, 감정의 결을 따라 걷는 이야기꾼. 햇살 아래 조용히 피어난 문장을 사랑합니다." 주말은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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